야, 내 사랑스러운 싸이코들이랑 쓰레기 새끼들! FR34K_S33K가 떴다.
오늘은 너희가 못 믿을 만한 걸 가져왔지!
근데 그 전에.
아직도 이 채널 읽고 있다는 건 니 새끼 뇌가 귀구멍으로 녹아 흘러내리진 않았다는 뜻이잖아?
그 상태로 계속 가고 싶어?
그럼 스매시를 한 캔씩 연달아 들이붓지 말고 세네 모금 남겨두고 마셔.
전직 스매셔가 하는 말이야.
이 좆같은 도시에서 며칠은 더 벌어줄 테니까.
오늘 너희 패배자들한테 뭐 들고 왔냐고? 이번 건 진짜 씨발 '특급 간식'이다.
동부 순환도로에서 있었던 그 '공격' 기억하지?
아직도 그게 사이버사이코 때문에 벌어졌다고 믿는 병신들 있냐?
믿는다면 지금 당장 스매시 네 캔 원샷하고 세상 돌아가는 거 이해하려는 시도는 그냥 포기해.
아니면 신스-코크나 한 대 꽂아.
마시는 게 뭐가 필요하냐? 행복을 정맥에 바로 주입하면 되는데.
거기서 몇 명이나 죽었는지 알아? 스물둘.
TV에 나왔던 그 꼬맹이도 포함해서.
알지, 금발에—차 뒤창으로 몸 반쯤 내밀고 있던 그 작은 애.
머리칼은 거의 그슬렸는데 나머지 몸에는 '그슬림'이란 말이 통하지도 않았지.
아야! 존나 아팠겠네.
사이버사이코시스의 주된 원인이 뭐냐?
불법 사이버웨어—뻔하지! 싸구려 크롬.
스캐빈저 해체 작업장에서 갓 나온 거.
미안한 병들 몸에서 뜯어낸 부품들.
지금쯤 그 병신들은 만에 조각조각 떠다니면서 돌연변이 물고기한테 뜯기고 있을 거다.
아니면 거기서 대체 뭐가 헤엄치든 간에.
그건 맞아.
근데 그걸로 '그 정도 규모의 연쇄 추돌'이 설명이 되냐고? 씨발, 될 리가 있냐!
기업 새끼들이 뭐 하나 좆같이 말아먹으면 늘 남 탓부터 하지, 맞지?
지금은 '유니트라'라는 회사의 불량 부품 때문에 우리 친구가 사이버사이코가 됐다고 떠들고 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걔들 엿 먹이려고 회사 말아먹게 한 다음 주식이나 처먹겠다는 거야.
누구든 상관없어—다 그렇게 해.
그 사이에 네 뇌는 스콥처럼 흐물흐물해지는데 기업 새끼들이 네 인생에 좆이나 관심 있겠냐?
무너지는 인프라, 개같이 오류 나는 교통 시스템, 법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리무진 타고 쳐 돌아다니는 높으신 분들—진짜 원인은 그거다!
내가 어떻게 아냐고? 증거가 있거든.
맞아, '증거'. 진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영상 클립을 손에 넣었어—충돌 방지 시스템 꺼놓고 과속하던 기업 리무진이 그 모든 연쇄 반응을 터뜨렸지.
직접 봐. 그리고 네 머리로 판단해. 내가 경고 안 했다고 하지 마라! PEACE!
—
그는 이런 데에 오던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 고급스럽고 너무 밝고 너무 투명했다.
일이 좆되면 숨을 데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런 곳에서 뭐가 좆될 거라고 믿기조차 어렵긴 했다.
여기까지 오려면 보안 체크를 세 번이나 통과해야 했고 시스템에 등록된 초대장 덕분에 그나마 가능했다.
옷차림은 확실히 '덜 갖춘' 편이었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여기 좀 싫은데."
조르는 테이블 위에서 탄산수를 담은 잔을 천천히 돌렸다.
"사방에서 감시당하고 듣고 있는 느낌이야."
"대놓고 보이는 곳만큼 숨기 좋은 데도 없어."
밀레나는 입꼬리만 살짝 들어 올린 채 반쯤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무슨 얘기 하려고? 메시지가 좀… 애매하던데."
"절대 남들이 알면 안 되는 얘기."
조르는 넓고 흠잡을 데 없이 꾸며진 실내를 둘러봤다.
시야 안에만 최소 백 명은 있었다.
작은 테이블, 큰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밀레나처럼 유리 부스에 앉은 사람들.
대화를 녹음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고급 장비도 필요 없었다.
입술만 읽으면 되니까.
물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모두의 입술을 동시에 읽는 건 쉽지 않겠지만 대놓고 보이는 곳—그녀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서비스 로봇들이 사람들의 주문을 가져다주며 테이블과 가짜 식물 사이를 유연하게 돌아다녔다.
"아야랑은 어때?"
밀레나가 물었다.
"뭐가?"
조르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어깨를 으쓱했다.
"아, 그건… 아니야. 우리는—"
그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런 사이 아니야."
"믿기 힘든데."
밀레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훑었다.
"너희 둘은 누구보다 잘 어울린다고."
조르는 고개를 저었다.
"아야는 나한테 관심 없어."
"그러게, 너는 신호를 읽지도 못하고 보낼 줄도 몰라. 아야도 마찬가지고. 둘 다 그래."
"그게 왜 우리 탓이야?"
밀레나의 시선이 옆으로 흘렀고 네드 템플턴의 눈과 마주쳤다.
그녀의 전 연인.
그는 늘 같은 테이블, 같은 가짜 야자수 아래에 앉았다.
오후 1시.
시계처럼 정확하게.
그 예측 가능함이 숨 막히도록 끔찍했다.
"키스해줘."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뭐…?"
조르는 얼이 빠져 그녀를 쳐다봤다.
"아무도 우리를 의심 못 하게."
밀레나의 미소가 넓어졌다.
"걱정 마. 나 안 물어."
조르는 망설였다.
잔을 옆으로 옮기고 테이블 너머로 몸을 기울였다.
밀레나도 똑같이 움직였고 둘의 입술이 몇 초 동안 맞닿았다.
밀레나의 혀가 그의 입술을 스치듯 어루만졌다.
둘은 떨어졌다.
밀레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유리 벽의 패널을 눌렀다.
유리문이 닫히며 그들을 카페테리아의 나머지 공간에서 분리했고 벽은 서리 낀 것처럼 뿌옇게 변했다.
다른 쪽 사람들의 실루엣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이제 완전히 안전해."
그녀가 설명했다.
"전자 신호 차단. 도청 장치는 화이트 노이즈로 익사시키고."
그녀 말에 맞춰 환기 덕트의 통풍구마저 닫히는 소리가 났다.
이제 그들은 바깥 소리가 한 점도 들어오지 않는 우윳빛 흰 정육면체 안에 앉아 있었다.
"완전히 안전하다는 건… 믿긴 힘든데."
조르가 말했다.
"인생에 위험이 조금도 없으면 뭐가 재미야?"
만남이 시작될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조르는 이제야 그게 뭔지 깨달았다.
밀레나가 담배를 안 피우고 있었다.
그는 폰을 꺼내 그녀에게 화면을 보여줬다.
뉴로포트 없이 폰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화면은 작은 편이었다.
"아는 사람이지?"
밀레나는 화면을 조심스럽게 훑어봤다.
"이 사람은… 급이 달라. 윗선 쪽에서도 한참 위. 알아—업무적으로만."
"다음에 또 언제 만나?"
"곧. 근데 네가 기대하는 건 하지 마. 그 사람 주변은 누구든 300피트 이상은 못 붙게 해."
"만나고 싶은 게 아니야."
조르는 말했다.
"죽이고 싶어."
정적이 방을 감쌌다.
탄산수에서 톡톡 터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그 무거운 침묵을 깨뜨린 건 조르의 배에서 난 꼬르륵 소리였다.
밀레나가 피식 웃었다.
그녀는 다시 패널을 눌렀고 벽은 투명함을 되찾았다.
"나도 뭐 좀 먹고 싶네."
그녀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테이블 표면 위에 메뉴가 떠올랐고 '올 푸드 기업 프리미엄 런치 스페셜'이 표시됐다.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시켜. 내가 살게."
—
네드는 접시 너머로 우울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다.
"죄송합니다만, 로버트 레드워트를 성적 서비스 목적으로 고용하실 수는 없습니다."
"근데 나 플래티넘 구독인데."
"유감스럽게도 플래티넘에는 해당 항목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고객님의 구독은 브레인댄스 무제한 대여를 제공합니다."
"가격 불러. 얼마든. 오늘 밤이 제일 좋아."
"고객님의 구독에는 배우를 고용하는 옵션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내가 한 달에 300에디를 대체 뭘로 내는데?! 플래티넘보다 더 좋은 게 있어?"
"없습니다, 고객님. 플래티넘이 최상위입니다. 안타깝게도 저희 회사는 고객님께서 요청하신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 예의 바른 '고객님' 같은 개소리는 뭐야?!"
배경에서 또 다른 목소리—역시 여자.
누군가 밀쳐지는 소리.
유리 깨지는 소리.
"너 뭐 되는 줄 알아, 이 쌍년아?! 나 에디 있어—씨발 가격만 불러!"
"사과드립니다만, 고객님. 저희 회사는 해당 종류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좆이나 까, 기업 노예 새끼야! 신고할 거야, 그럼 누가 사과하는지 보자고. 너 길바닥에 내팽개쳐질 때 말이야! 굶어 죽는 거 기대해!"
'기업 노예'의 머릿속에 들어간다는 건 빈 병 속에 몸을 억지로 쑤셔 넣고 그걸 해변에 던져버리는 것 같았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믿기 힘들 정도의 잠재력을 '선물'처럼 받지만 대부분의 나이트 시티 시민은 좆같은 유닛 안에 갇힌 채 평생을 보낸다.
거의 인간이 아니다—가축에 가깝다.
보통 사람은 운명을 자기 손에 쥐고, 빚고, 위험을 감수한다.
기업 노예는 그저 닥친 문제에 반응할 뿐이다.
핀볼처럼 여기저기 튕기며 한 난관에서 다음 난관으로 튕겨 다닌다.
자극이라고 해봐야 처벌과 멍청한 쾌락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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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하찮은 쥐잡이, 바퀴벌레 구제업자—도 바퀴벌레처럼 쳐박혀 살았다.
직장이 없으면 얼마나 버틸까? 저축? 없었다.
그런 부류는 저축하지 않는다.
길어야 2주.
그때쯤이면 결국 기어 나와야 한다.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2주는 긴 시간이다. 너무 길다.
알버트 딜레이니—이 임시 패거리의 넷러너.
수년간 보호막 안에서 살던 놈.
엄마가 다 해줬다.
먹여주고, 챙겨주고, 더러운 옷도 빨아줬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작은 둥지의 안전을 박차고 나왔다.
왜? 그동안 살아남게 해준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게 대체 뭔데?
그들은 20층쯤 되는 어딘가의 넓은 턱에 앉아 있었다.
무거운 부츠 세 켤레가 도시 위로 대롱대롱 매달린 채.
장소야 어쨌든 상관없었다.
적어도 귀찮게 구는 놈은 없으니까.
덤덤, 카를라, 딕시. 카를라는 딕시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있었다.
세상 모든 나쁜 것에서 보호하려는 것처럼.
아니면 그냥 따뜻하게 해주려는 걸지도.
떨어지면 같이 떨어질 거였다.
그들은 붉게 타오르는 광학 눈으로 도시의 불빛을 바라봤다.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용감하기만 하면, 손을 뻗기만 하면, 선물을 약속하는.
용감한 데다 똑똑하기까지.
카를라가 생각으로 말을 던져 그를 정정했다.
덤덤은 고개를 끄덕이며 S-키프 흡입기에서 길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그가 보는 도시는 모두를 유혹했다.
약속은 잔뜩 해놓고 정작 쥐어주는 건 극소수에게만 쥐꼬리만큼인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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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컨테이너, 진짜 말한 만큼 가치가 있는 걸까?
"돌려주면 안 돼?"
로스가 물었다.
"돌려줘?"
레너가 쏘아붙였다.
"무슨 찐따 같은 소리야? 돌려줘도 지옥, 안 돌려줘도 지옥이야."
"그냥… 돌려주고 사과하면…"
"그래서 네가 대장감이 아닌 거야."
레너가 말했다.
"어떻게 돌려줘?! 그럼 문제를 없애는 게 아니라 새 문제를 만드는 거지. 지금은 당장은 아무도 우리가 이걸 갖고 있는지 몰라."
"모르겠다… 코로나도에 던져버리면?"
"난 지금 널 코로나도에 던져버리고 싶은데."
"알겠어, 알겠어… 근데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젠장… 나도 알아!"
레너가 소리쳤다.
"그게 씨발 문제라고!"
레너는 밀리테크 로고가 찍힌 회색 컨테이너 옆을 왔다 갔다 했다.
컨테이너는 버려진 공장 지하의 작은 방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지면 아래 15피트.
누가 찾아낼 확률을 더 낮추기 위한 거였다.
그 컨테이너에 추적기가 있었다면 진작에 손님이 찾아왔을 거다.
레너는 키패드에 아무 코드나 눌러 넣었다.
틀린 코드가 울리는 소리에 로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떨궜다.
"그냥… 기다리면 안 되나?"
로스가 제안했다.
"그래, 씨발, 내가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지."
레너가 간신히 침착함을 붙잡으려 했다.
손등의 십자가 문신이 사납게 빛났다
"손에 좆 잡고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는 컨테이너를 걷어찼다.
"좆까. 난 한다면 하는 놈이야!"
"내가 방법을 찾아볼게."
"잘 들어. 다른 애들이 이거 알면 안 돼, 알겠지?"
레너는 확인하듯 컨테이너를 한 번 더 걷어찼다.
"워든, 이 좆병신 같은 개새끼…"
—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
표적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고 넷을 뒤지는 대신, 조르는 폰 화면의 메시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답해야 하지?
그는 이런 식의 연락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없었다.
머릿속에서 가능한 모든 버전을 돌려봤지만 다 이상했다. 다 그냥… 멍청했다.
밀레나와 키스한 게 이런 걸 만들었나?
오래전에 잃어버린 무언가를 다시 불붙인 걸까?
아니면 외로움에 질려버린 걸까.
그리고 '기다림'에. …근데 뭘 기다렸던 거지?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서 시스템을 이긴다거나 보안을 뚫고 들어갈 길을 찾는다거나?
말도 안 된다.
표적에게 충분히 가까이 갈 수조차 없을 거다.
그건 하수구로 곧장 향하는 헛된 꿈이었다.
그 키스—위장일 뿐이었다.
섞여 들기.
시선 끌지 않기.
그는 스스로 변명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저 플래시백과 죄책감을 완전히, 단 한 번에 치워버릴 수만 있다면.
—
"슬슬 일이 굴러가기 시작하네."
OP1이 혼잣말을 했다.
방이 너무 작아서 사실상 모두에게 들릴 정도였지만.
"언제차럼 또 똑같은 하루일 줄 알았는데."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잖아. 귀뚜라미 소리만 들렸지."
OP2가 상기시켰다.
"근데 갑자기 데이터가 메뚜기 떼처럼 몰려와. 차트가 전부 빨갛게 바뀌고 있어."
"확실히 이번엔 좀 다르네 ."
OP1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드론 해킹—인정할게, 꽤 잘했어."
"인상적이긴 했지."
OP2도 인정했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야. 이번이 '그거'일 수도 있어."
"진짜 뜬금없이, 그냥 그렇게. 빵! 원격 장악. 완전 자율형이고 추적 가능한 연결은 흔적도 없어. 너희 둘, 그거 예상했어?"
"너희 둘 다 너무 과하게 생각해."
OP3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그게 아니야. 그건 그냥 보조 기능이었을 뿐이고."
"그래도 인상적이긴 했잖아."
OP2가 덧붙였다.
"그 구역 감시팀이 지금 보안 조이느라 난리겠지?"
OP1이 물었다.
"구멍이 너무 커. 자기네 드론에 무슨 일 났는지 알아내려고 발버둥칠 거야."
"우리한테서 알아내진 못해."
OP3가 안심시켰다.
"작전 접히면 걔네한테 돌아가는 건 검열된 보고서일 테니까. 스탠리가 밀어붙이면 그마저도 거의 없겠지만."
—
"진짜 그렇게 말했어?"
론이 팔꿈치로 상체를 받쳐 일으켰다.
"'죽이고 싶어'라고?"
"딱 그렇게."
밀레나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가 올라올 걸 아는 듯, 에어컨의 윙윙거림이 한층 커졌다.
나이트 시티의 차갑고 네온빛 잔광이 모든 것 위로 번져 나갔다—벌거벗은 몸, 구겨진 시트, 바닥. 그리고 그의 손에 든, 따른 지 열두 분 된 위스키 잔의 유리에도.
"근데 그게 그렇게 나쁜 생각이야?"
리퍼닥이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그 인간만 없어지면 세상이 좀 나아질 수도 있잖아? 최소한 더 나빠지진 않을 테고."
"난 협상가야. 암살자는 아니지."
밀레나가 한 모금 빨고는 침대 위로 몸을 세웠다.
"대부분은 결말이 보여. 상대보다 두세 수 앞서 있어야 하는데, 상대도 마찬가지야. 체스랑 비슷하지—누가 흑이고 누가 백인지, 이미 정해져 있어. 오프닝도 깔려 있고. 근데 네가 두는 수는 시간이 지나서야 그 '가능성'이 모습을 드러내. 이기려면 상대보다 더 멀리 계산해야 해. 결국엔 사람을 얼마나 잘 읽느냐 싸움이야."
그녀가 담배 연기를 끝까지 내뿜었다.
"난 조르를 못 읽었어. 그쪽이 먼저 뽑아 들고, 먼저 쐈지."
잠깐 멈추고 덧붙였다.
"비유적으로 말야."
론은 기침 한 번 없이, 한 호흡으로 그렇게 많은 말을 뽑아내면서도 연기를 천천히 흘려보내는 그녀가 신기했다.
사실 그녀는 단 한 번도 기침을 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억누르지 못한 채 그녀의 피부를 쓰다듬는 손끝으로 그녀를 훑었다.
그 몸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들뜨게 했다.
결국, 밀레나의 폐는 오리지널이었다.
완전 '개닉'.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겠네."
론이 말했다.
"겉으로는 그렇게 안 보여도.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자꾸 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사이코패스는 조르가 아니라 보그야. 난 그 미친 새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
밀레나가 담배를 빨아들이며 거의 절반을 태울 기세로 흡입했다.
"근데 조르는—그 안에 뭔가가 있어. 본인도 모르는 뭔가."
"뭐가?"
"나도 알면 좋겠다."
밀레나가 낮게 웃었다.
"조르가 '오픈북'이라면… 펼쳐 봤을 때 나오는 게 말이 안 되는 낙서도 아니고, 외국어도 아니고, 거짓말 비슷한 흔적조차 아니야. 그런 '텍스트' 자체가 없어. 읽을 지점이 없달까."
"걔는 임플란트도 다 뗐잖아."
론이 무심코, 부드럽게 밀레나의 발을 쓸었다.
"그래도 경험은 있어. 걔 없었으면 우린 진작에 죽었을 걸."
"근데 이 즉흥 갱의 목적이 뭐야, 대체?"
밀레나가 뚝 잘랐다.
"픽서 없이는 우리가 훔친 걸 팔 수도 없잖아. 두 번 다 운이 좋았던 거고. 이유도 규칙도 없어—그냥 '운'. 완전 예측 불가능."
"난 네가 그런 거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감정, 고점과 저점."
론이 말했다.
론의 손끝은 지난 1년간 그녀가 치른 그 어떤 중요한 협상보다 더 큰 전율을 줬다.
밀레나는 다리를 움직이지 않으려 애썼다.
그가 멈추지 않게 하려고.
그리고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고.
"롤러코스터랑 러시안룰렛은 달라."
그녀가 낮게 말했다.
"리스크는 내가 흐름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질 때만 재밌어."
밀레나는 잠시 생각하듯 담배를 입술에 걸쳤다.
"아까, 네가 뭔가 곤란한 일이 있다고 했지."
"내 빚이… 누군가한테 넘어갔어. 뭐, 됐어. 중요하지 않아."
론이 베개에 다시 등을 묻었다.
"옛날 얘기야.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네."
밀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한 모금 더 빨았다.
그리고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갔다.
"조르를 읽는 건… 자기가 똑똑한 척하느라 스스로를 질식시키는 과하게 복잡한 책을 읽는 느낌이야."
"걔 똑똑하긴 한데, 그 정도는 아니잖아."
"난 조르가 아니라, 조르 '안에 있는 것'을 말하는 거야."
밀레나의 시선이 어딘가 먼 곳을 훑었다.
"PTSD일 수도 있지. 한 번 끝까지 망가져서 거의 자기 자신을 부숴버릴 뻔한 거야. 그래서 정신이 첫 번째 인격을 보호하려고 두 번째 인격을 만들어낸 거지. 짐을 대신 지게 하고. 기존 걸 덮어써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아까 우리 즉흥 갱의 목적이 뭐냐고 물었지…"
론이 짓궂게 웃었다.
"그 배터리 살 사람을 내가 찾았거든."
밀레나는 저려 온 다리를 쭉 펴고 담배를 비벼 껐다.
론을 바라봤다.
상대가 누구였든 보통은 벌써 내쫓고 싶었을 텐데. 지금은 정반대였다.
예전엔 누가 옆에 몇 시간만 있어도 숨이 막혔는데 지금은 론이 그냥… 더 오래 남아주길 바랐다.
"내가 하려던 말은 이거야." 론이 말했다.
—
"브레인댄스를 틀면 다음 화 대신 메시지가 떠. '서비스 이용 불가. 잔액 부족.' 그리고 이 메세지를 못 지우겠어."
"그건 이해합니다."
상담원이 담담하게 말했다.
"문제는 고객님께서 며칠째 구독료를 결제하지 않으셨다는 부분이죠.."
"그래, 그야 그렇지. 돈이 없으니까."
론이 짜증 섞인 숨을 뱉었다
"근데 나 '천국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다음 화를 봐야 하거든? 이 멍청한 메시지가 계속 튀어나와서 못 보잖아."
"구독료를 결제하지 않으셔서 그렇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이 메시지만 없애고 그냥 보고 싶다니까. 뭔가 오류겠지."
"오류가 아닙니다. 구독료를 결제하시면 메시지는 사라집니다."
"봐, 이번 주말에 월급 들어와. 그때 낼게."
"죄송하지만, 먼저 결제하셔야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순서가 뭐가 중요해? 오늘 보고, 주말에 내면 되잖아."
"죄송합니다만, 저희 서비스는 그렇게 운영되지 않습니다."
—
페페 나하로는 손님들이 술잔을 들고 정문으로 우르르 빠져나가는 걸 지켜봤다.
엘 코요테 코호는 순식간에 텅 비었다.
그는 입속으로 욕을 씹었다—다음 한 시간 매출이 날아갔다.
아무 일도 아닌 척해야 할지 아니면 도움을 불러야 할지 고민했다.
언제든 이 바가 '사격장'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딱 한 명만 남아 있었다.
높은 테이블 하나에 앉아 신스미트 라면을 먹으면서—방금 전 소동과 그 뒤를 잇는 기묘한 정적을 눈치채지 못한 척.
"거기 서 있기만 할 거야, 덤덤?"
워든이 반투명한 하늘색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는 테이블 아래를 발로 차 의자를 하나 툭 빼냈다.
"앉아. 문명인처럼 얘기 좀 하자."
덤덤은 코트를 젖히고 삐걱거리는 스툴에 앉았다.
신스레더가 끼익 소리를 냈다.
딕시는 한쪽에 카를라는 다른 쪽에 섰다.
워든은 라면을 후루룩거리며 새로 온 셋을 별일 아니라는 듯 흘겨봤다.
"구경 왔나?"
그는 한 입씩 씹으며 말했다.
"아니면 자율주행 택시 GPS가 또 맛이 갔나?"
"우린 서로 영역 안 건드리고 살아왔잖아."
덤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네가 이 '헤이우드'라는 하수구에 처박혀서 네 똥으로 진흙파이 빚고 놀든 말든, 난 상관없어."
"똥 진흙파이."
워든이 고개를 끄덕이며 표고버섯처럼 생긴 뭔가를 꿀꺽 삼켰다.
"말빨 조지는 걸로 치면 약하긴 한데, 기억해 둘 만은 하네. 언젠가 내가 웃긴 말 다 떨어지면 써먹어야지. 근데 안 웃긴 게 뭔지 알아? 우리 구역에 발 들이는 거."
"침범? 우리가?"
덤덤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웃기네… 평화를 깬 건 너희잖아. 도시 반을 가로질러 노스사이드까지 넘어왔어. 이건 도발이야—누군가에겐 전쟁 선포로도 보일 거고."
워든이 씹던 걸 멈췄다.
"씨발, 무슨 소리야? 우리 애들 노스사이드에 발도 안 디뎠어."
"너희가 우리 코앞에서 밀리테크 창고 털어놓고 PEST CONTROL이라고 적힌 밴 타고 우리 동네를 활보했잖아."
덤덤이 차갑게 말했다.
"그게 도발로 안 들려? 아니면 그게 네가 말하는 '웃긴 농담'이냐."
덤덤은 사진이 뜬 폰을 테이블 위로 밀어 워든에게 보냈다.
워든은 즉시 입맛을 잃은 얼굴이 됐다.
"저건 내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가 가진 정보는 다르게 말하던데."
덤덤은 눈을 찌푸릴 수만 있었다면 그랬을 표정이었다.
"작전 지휘는 '조르'라는 놈이 했더만."
"조르가 필요해?"
워든이 스툴 등받이에 기대어 스툴을 일부러 뒤로 흔들었다.
경고처럼.
그는 히죽 웃었다.
"마음대로 데려가. 내 사람 아니야. 걔한테 관심도 없어. 존재 자체를 이미 잊었거든. 의뢰가 하나 있었고 거기에 잠깐 썼어. 세 시간. 그게 끝."
"그 새끼를 우리한테 넘겨."
"내가 어디 있는지 알면 진작에 말했지."
워든이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몰라.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고, 어디 있을지도 모르고… 말했잖아. 이미 잊었다고."
"레너도 너한테 똑같이 말하고 싶을걸."
덤덤이 살짝 웃었다.
이 말은 워든에게 아프게 박히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목줄 잡혀서 목초지로 쫓겨난 기분이야? 응?"
덤덤은 다음 사진으로 넘겼다.
워든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숨을 내뿜었다.
"보그…"
"오호."
덤덤이 허리를 펴며 웃었다.
"듣고 있어."
워든은 냅킨으로 입을 닦고 반으로 접었다.
"걔는 내 밑에서 일해. 사우스 헤이우드 출신 병신인데 머릿속은 스컬스펀지야."
워든이 이를 갈았다.
"그 개새끼, 한동안은 얌전히 숨어 있으면서 모범 나이트 시티 시민 놀이 좀 하랬더니."
"심심해졌나 보지."
"그래. 인생이."
워든이 주먹을 꽉 쥐었다.
"걔가 조르랑 나머지 애들을 내게 데려왔어. 그 납대가리는 겁쟁이야—쥐어짜면 다 뱉어. 시청에서 일해. 아홉 시부터 일곱 시까지. 걔를 잡으면 조르랑 나머지한테 안내해 줄 거야. 그다음은 네 마음대로 해. 걔한테 무슨 일이라도—영구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글쎄, 난 오히려 너희한테 고맙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덤덤은 한숨을 쉬었다.
눈꺼풀이 있었다면 눈을 감았을지도 모른다.
—
"이게 도덕적으로 괜찮다고요? 남편도 바람피우고 아내도 바람피우고—그것도 몇 번씩이나!"
"맞습니다, 고객님. 그게 그 브레인댄스의 줄거리입니다. 그런 콘텐츠가 취향이 아니시라면 다른 경험을 재생하실 수 있습니다. 고객님의 구독은 150개 이상의 다양한 브레인댄스를 제공합니다."
"이 혐오스럽고 타락한 쓰레기를, 아무도 다시는 겪지 않게 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런 콘텐츠를 재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시리즈 'A One-Time Thing'은 바로 그런 걸 다루고 있고요."
"'한 번'이 아니잖아요! 맨날이에요! 매 회마다 타락하고 방탕하게 놀아대잖아!"
"다른 브레인댄스를 재생하셔도 됩니다."
"난 다른 브레인댄스가 싫어요. 난 당신이 이걸 바꾸길 원해요. 등장인물들이 좀 품위 있게 행동하게 만들라고요."
"죄송하지만, 그건 제 권한 밖입니다."
"그게 딱 우리 목사님이 하는 말이에요! 우린 통제할 수 없다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서로 죽이고 가족들은 깨끗한 물도 못 마시고 음식 맛은 악마의 배설물 같고—"
"죄송하지만, 저는 브레인댄스 제작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죄송하다고요?! 당신도 밖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다 만나고 다니겠지! 이 도시는 죄인 천지예요!"
"고객님, 굳이 그 브레인댄스를 재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뭘 재생할지 말지, 신 없는 창녀 같은 게 정할 일 아니야! '마지막 해방자 엘리야후 교회'는 이런 퇴폐를 금지해! 너희는 이 땅의 역병이야, 무고한 영혼을 썩게 하는—문제가 네 눈앞에 뻔히 있는데도 너는—"
"문제는 당신이에요."
상담원이 말했다.
"교회에서 금지하는 콘텐츠라면 애초에 재생하지 마셨어야죠."
화면이 꺼졌다.
헤드폰 속 소리도 뚝 끊겼고 채널이 바뀌는 지직거림이 뒤따랐다.
"아야!"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내 사무실로. 지금."
아야는 헤드폰을 벗고 회전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백 명의 테크 서포트 상담원들이 뱉어내는 웅성거림이 마치 벌집 속에 들어온 것처럼 귀를 꽉 채웠다.
매니저의 사무실은 맨 끝, 반투명하게 서리 낀 유리 벽 뒤쪽에 있었다.
아야는 끝도 없이 늘어선 똑같은 칸막이들 사이를 지나 걸었다.
모두가 사과하고 있었다.
사과할 일이 하나도 없는데도.
사무실 문 앞엔 짧은 계단이 있었다.
아야는 두 걸음에 올라섰다.
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매니저가 넓은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평균보다 작은 체구를 감추려는 듯 한 치수 큰 정장을 걸쳤는데 오히려 그 왜소함만 더 도드라지게 했다.
"네 마지막 고객과의 통화, 내가 끊었다."
그는 인사도 없이 말했다.
"시스템에서 네 이름이 주황으로 떴다가 곧바로 빨간색으로 바뀌더군."
아야는 책상을 마주한 의자 옆에 서 있었다.
그는 앉으라고 하지 않았다.
"저런 사람들들이 전화하면요…"
그녀가 말을 꺼냈다.
"대부분은 기술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누군가한테 소리 지르고 싶어서 전화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매니저는 책상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손가락을 깍지 꼈다.
"레벨 2 교육에서 다 말해. 다 거기 있어."
"저는 레벨 1밖에 안 받았어요."
"어쨌든."
그가 말했다.
"너 오늘 사고 쳤어. '문제'라는 단어를 쓰면 안 돼. 너는 그걸…"
그는 화면을 힐끗 봤다.
"열한 번 썼어. 방금까지 합치면 열두 번이고."
아야는 그의 손이 만드는 구경거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가락이 피라미드처럼 모였다가 끝이 서로 두드려졌다가 다시 맞물렸다.
"알아요. 죄송해요."
그녀는 죄송하지 않았다.
"근데… 그럼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좋아. 사과해서 다행이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어떤 상황이든 우린 '문제'라는 단어를 안 써. 절대.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거든. 알겠어?"
"그런 것 같아요."
"같아?"
그의 손가락이 다시 다음 춤을 시작했다.
"어려워요. 저 사람들… 아니, 우리 고객들 대부분은요."
아야는 잠깐 말을 골랐다.
"상황을 잘못 알고 전화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당연하지."
매니저가 태연하게 말했다.
"걔들은 멍청이거나 인생에 질렸거나 둘 중 하나야. 그럼 이 직원들이 다 왜 있는 줄 알아?"
그는 서리 낀 유리 너머를 손짓했다.
"대부분 착각하고 있는 우리 고객들이 자기가 옳다고 믿게 만들어주려고 있는 거야. 그 환상을 유지해야만—그제야 계속 구독료를 내지. 단순하지."
"저는 기술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인 줄 알았어요. 근데 지금까지… 그런 전화는 한 통도 없었어요."
"재차 말하지만—"
그의 손이 다시 부산해졌다
"우린 수년째 기술 '문제' 같은 거 없어. 고객센터는 불만 처리용이야. 걔들은 베개에 대고 소리 지르는 거고 넌 베개인 거지. 레벨 2에서 그 얘기도 다 해."
그는 숨도 안 쉬고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 같은 표현도 쓰면 안 돼. 무례하게 들린대. '재생 안 하셔도 됩니다' 같은 말도 금지야. 훈계처럼 들리거든. 덕분에 우리, 지금 할인 하나 넣어줘야 해. 또 기억해. '저는 통제할 수 없습니다' 같은 식으로 회사랑 거리를 두면 안 돼. 너는 회사야. 너는… 너는…"
그가 잠시 단어를 찾다가 손가락이 화면 위를 휙휙 쓸었다.
"그래, 너는… 거대한 몸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아주 작고 조그만 '입' 같은 거야."
그의 손이 다시 피라미드가 됐다.
"레벨 2 교육은 모레야. 근데 오늘은"
—피라미드가 다시.
"저녁 여덟 시에 비공식 모임 같은 게 있어. 얼굴 좀 익혀. 회사 돈이야."
"오늘 저녁은 약속이 있어요."
아야가 자세를 바로 했다.
"약속은 바꾸라고 있는 거지."
그의 손가락이 다시 제멋대로 움직였다.
"사실 난 너를 이미 해고했어야 해. 최소한 시스템은 그렇게 말했거든. 근데 내가…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어."
"저는 마지막 기회 같은 거 필요 없어요."
그의 손이 멈췄다.
"무슨 뜻이지…?"
"그만둘게요. 여기서 더 오래 있으면 사람을 미워하게 될 것 같아요."
아야는 속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나 자신까지 미워하게 되겠지.
---
그는 대체 얼마나 오래 이렇게 걸어 다닌 걸까.
자동 조종 상태 같았다.
여기가 어딘지도 안전 등급이 어떤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차 한 대가 천천히 옆을 지나갔다.
본능은 당장 몸을 던져 숨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겨우, 겨우 버텼다.
먹잇감처럼 굴면 포식자가 달라붙는다.
이론은 그럴듯했다.
실제로는 쉽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섞여 들려고 애쓸수록 몸짓이 더 부자연스러워졌다.
그걸 의식하는 순간 더 망가졌다.
그는 인도 한가운데서 갑자기 멈춰 섰다.
경찰이 무서웠던 적은 없었다.
그들에겐 그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다.
귀찮게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생겼다.
그가 뭘 한 건 아니지만 사건에 엮였다.
최소한—어머니의 죽음에. 그가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소한.
건물 배치가 눈에 들어오자 그는 마침내 자기가 어디인지 알아냈다.
노스 헤이우드.
생각보다 멀리 헤맨 건 아니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려다—아니, 잘못이다. 이제 집이 달라졌다.
그는 어제부터 그 유닛을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새 유닛. 경찰이 여기서 알버트를 찾아낼까? 가 알기로는—아니다.
부동산 중개인은 성도 묻지 않았다.
그는 보안 거래 서비스로 큰 보증금만 보내면 됐다.
알버트는 현금을 쓰지 않았다.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데는… 일주일, 길면 이주쯤 걸리겠지.
어머니는 죽었다.
보통이라면 끔찍할 일이다.
그런데 그가 처음 느낀 건 안도감이었다.
그다음이 수치심.
왜 수치심이지?
그는 혼자였다.
주변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수치심…? 멍청한 감정이었다.
그는 더 이상 어머니와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안도됐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질문과 추궁을 피해 돌리지 않아도 되고 또다시 난리를 받아줄 필요도 없었다.
어머니는 이제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죽었으니까.
그녀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짐도 아니었다.
어깨에서 뭔가가 뚝 내려간 느낌이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새 삶을 시작하는 것뿐이었다.
오래된 삶은 언젠가 흐려지고 사라지고 잊힌 기억의 고철 더미로 굴러떨어질 것이다.
어머니는 죽었다.
그는 슬프지 않았다.
대신 수치심.
그는 그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만큼 늦게 그 감정을 배웠다.
감염처럼—상황이 옮기는 병처럼.
수치심은 후회였다.
변이되어 무기화된 후회.
그는 '정상' 사람들이 느끼는 방식으로 수치심을 느끼진 않았지만 왜 사람들이 그 감정을 갖는지는 이해했다.
그게 더 나빴다.
아니면… 그게 그를 더 인간답게 만들었나?
아니다.
역사 수업에서 배운 인간성 따위로 따지면—그냥 더 나쁠 뿐이다.
수치심은 자신에 대한 깊고 흔들리지 않는 비난이었다.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했다는 그 결과로 '너는 뭔가 잘못됐다'는 판결.
수치심은 바깥에서 시작되지만 안에서 느껴진다.
어머니는 죽었다.
슬프지 않은 게 부끄러워야 할까?
그는 부끄럽지 않았다.
그럼 이제 뭘 해야 하지?
수치심도 슬픔도 아니라면 그는 뭘 느껴야 하지?
그녀에 대해 뭐라 말하든 어머니는 그에게 감정을 가르치려 애썼다.
아니, 정확히는 감정을 '흉내 내는 법'을.
예전엔 세상과 사람들은 어떤 알 수 없는 리듬에 맞춰 질질 끌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 리듬을 배우면서 점점 더 해독하게 됐다.
그리고 그만큼 더 위험해졌다.
마침내 세상은 깨어 있는 악몽이 됐다.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감정들이 바이러스처럼 사람에서 사람으로 튀어 다니는 악몽.
어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감정들에 면역이었다.
어머니는 죽었다.
그리고 그걸로 끝났어야 했다.
딱 하나의 사소한 디테일만 아니었다면—서랍 맨 아래에, '케이브'에 들어갈 액세스 코드가 담긴 샤드가 있었다.
그는 돌아가야 했다.
---
"마지막으로 맥주 마신 게 모리스랑이었어. 너도 만났던."
조르가 영 만족스럽지 않은 캔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건… 뭐, 어떻게 끝났는지 알지. 그다음엔 론이랑 한잔했고."
아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썩 좋게 끝나진 않았고."
조르가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은 나랑 마시는 거네."
아야가 웃었다.
"이번엔 무슨 일이 나려나?"
그들은 운하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물은 천천히 흘렀지만 표면엔 쓰레기가 두껍게 깔려 있었다.
벽을 살짝 두드리는 잔잔한 물소리 대신 플라스틱 병과 금속 캔이 긁히고 부딪히는 소리만 났다.
네온 때문에 오후처럼 밝아진 밤하늘 위로 AV와 드론이 엮이며 지나갔다.
에어로젭들이 노스사이드 위에서 떠 있으면서 화물을 올리고 내렸다.
홀로 광고들이 코퍼 플라자를 덮고 차갑고 부드러운 빛을 뿜어냈다.
모든 게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앉은 곳만은 조용한 오아시스 같았다.
"모리스…"
아야가 되뇌었다.
"걔는 어때?"
"몰라."
조르가 캔을 입술로 가져가더니 거의 맛만 볼 정도로 마셨다.
"그냥… 새 파트너가 나보다 더 자주 맥주나 같이 마셔줬으면 좋겠고. 싸움 같은 데 또 휘말리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 일 그만뒀어. 아니면… 해고당했나. 둘 중 하나겠지."
아야가 말했다.
"그 이후로는… 알지. 완전 빈털터리야."
"나도."
조르가 씁쓸하게 말했다.
"아니었으면 맥주 한 캔도 이렇게 나눠 마시진 못했겠지."
"그래도 와줘서 고마워. 나 이거 필요했거든."
"난 네게 줄 수 있는 게 쓰레기 떠다니는 운하랑 캔맥주뿐이라서 미안하네."
조르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 사실 맥주 싫어해."
"나도."
아야가 말하더니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아무 걱정 없이 웃은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조르도 웃었다.
그는 캔을 기울여 크게 한 모금 마시다가 표정이 갑자기 굳었다.
"난 7년 동안 혼자였어."
그가 말했다.
"나랑 내 생각만. 좋은 생각은 아니었지. …건강한 건 아니었을 거야."
"매리스 바는 나한테도 좋지 않았어."
아야가 말했다.
"그곳은 독이었거든."
그녀는 눈을 꼭 감았다.
"혹시… 그런 사람 있었어?"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니까… 너한테 정말 중요한 사람."
"있었지."
조르가 잠깐 침묵을 내려놓았다.
"아내와 아들."
긴 정적.
"죽었어."
"아…"
아야의 입이 굳었다.
"미안해. 아니, 잠깐, 방금 그건 좀 병신 같았어."
그녀가 숨을 골랐다.
"언제…?"
"7년 전. 전쟁이 끝났을 때."
쓰레기 더미가 끝없이 바삭거리고 긁히며 흘러갔다.
운하 건너편엔 창문이 텅 빈 버려진 창고들이 서 있었다.
여기에 1년을 앉아 있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약속했어. 떠나자고. 샌프란시스코로 가자고."
조르는 맥주를 끝냈다.
"근데 못 갔지."
그는 캔을 찌그러뜨려 만 쪽으로 흘러가는 쓰레기 흐름에 던졌다.
"이제는 잊었어야 하는데, 못 잊어. 못 해."
그가 낮게 말했다.
"복수—그게 지금 나를 움직이는 유일한 거야."
아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넌 지금까지 잘했어, 고마워."
"뭘?"
조르가 궁금하다는 듯 올려다봤다.
"나를 매리스 바에서 꺼내준 거."
아야는 손을 머리 위로 곧게 들어 올리고 몸통을 좌우로 흔들었다.
눈을 감은 채 그녀는 자기 축을 중심으로 천천히 돌았다.
자신을 위해 춤췄다.
조르를 위해서도.
매리스 바 대신, 나이트 시티의 모든 빛이 그녀 위로 쏟아졌다.
7-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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