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몰리 버나드. 복도 건너편에 살았대요."
신참이 말했다.
"이 유닛 임차인은 아야 홈스. 기록은 없지만 넷 좀 파봤더니 이게 나왔습니다."
태블릿 화면에 반쯤 벗은 댄서가 매리스 바를 홍보하는 광고가 떠 있었다.
"이 사람이에요. 생체인증 로그도 확인했는데 아야 홈스는 어제 오후 7시 10분에 유닛을 나갔다가 오늘 새벽 4시 16분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분 만에 다시 나갔어요."
리암은 반쯤 칭찬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태블릿을 읽는 내내 껌을 씹었다.
포렌식이 유닛 전체를 훑고 있었다.
지금까지 확실하게 증거를 확보한 곳은 하나뿐이었다.
현관 근처의 주방 쪽 보조 공간에서 시작해 침실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
침실은 또 하나 더 있었다.
죽은 이웃의 다리가 문틈 밖으로 튀어나와 있던 그 방.
"의견은?"
형사가 태블릿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신참은 시체를 밟지 않을 만큼만 바짝 다가가 몸을 숙였다.
"목에 자상이에요. 세로로 일정 가격."
그녀가 말했다.
"버나드 부인이 거의 여든이 아니었으면 맨티스 블레이드라고 했을 텐데요."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노파한테 맨티스 블레이드를 쓸 이유가 없잖아요. 그리고 댄서가 그걸 왜 달고 있겠어요?"
"홈스가 했다고 보는 건가?"
신참은 볼을 부풀렸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배제는 못 하죠. 자기 유닛이고… 잠깐 들어왔다가 바로 사라졌잖아요."
"홈스는 어제 저녁 7시에 나갔고 버나드는 자정 조금 지나 죽었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신참이 다시 몸을 숙여 들여다봤다.
"아직 스캔도 안 했잖아요."
"안 해도 돼. 정상 작동하는 카메라가 1층 복도에 하나뿐이거든. =피드 확인했어. 자정부터 12시 15분까지 구간이 통으로 비어."
리암은 녹화를 띄우고 4시 16분으로 넘겼다.
"여기."
"혼자가 아니네요."
신참이 중얼거렸다.
아야 옆에는 젊은 남자가 붙어 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보이려는 차림이었지만 자세와 걸음걸이까지 숨길 순 없었다.
군인 같은 보행.
형사는 얼굴을 확대하고 안면 인식 검색을 돌렸다.
몇 초 뒤 매치가 떴다.
"걸렸다."
경감이 기록을 훑었다.
"조르. 성은 없음. ‘바이어스 앤드 선’이라는 해충 방제 업체 대표가 재산 피해 접수했네. 정확히는 밴."
그는 아래로 더 내렸다.
"해리스 마당에 있던 그 밴이야. 경비원이 살해된 현장."
"맨티스 블레이드로요."
신참이 굳은 얼굴로 덧붙였다.
---
깜빡이는 조명이 오래된 벽돌벽 일부를 드러냈다.
앵커 플레이트로 겨우 버티고 있는 벽.
원래 용도가 뭔지도 모르는 태고의 지하 홀 흔적.
검은 피가 번들거렸다.
시체들이 철제 에 매달려 있었다.
어떤 건 알몸, 어떤 건 옷을 입은 채.
매달린 피부는 믿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길게 길게 띠와 문양으로 잘려 있었다.
어떤 것들은 여러 구획이 꼬여 땋은 머리처럼 엮여 있었고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졌다.
베인 깊이는 몇 밀리미터를 넘지 않았다.
살아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횃불에서 나온 검은 연기가 천장 쪽 어둠으로 말려 올라갔다.
빛이 닿지 않을 만큼 높았다.
여긴 우연히 고른 장소가 아니었다.
지하층 환기 시스템이 연기를 꽤 효율적으로 빼고 있었다.
레너는 전시물을 덜컥 역겹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일할 때는 어느 정도의 가학성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쉬는 시간까지 이럴 필요는 없다.
그럴 거면 똥싸고 오줌싸는 것도 예술로 만들지 그래.
"여기 존나 소름 돋네 씨발."
로스가 중얼거렸다.
"노스사이드에 온 걸 환영한다."
레너가 말했다.
"저 새끼들은 진짜 맛이 갔지."
둘은 입구에서 건네받은 음료를 홀짝였다.
너무 달고 확실히 도수도 약했다.
그들은 빈 잔을 안도하듯 내려놓고 트레이에서 더 센 걸 집어 들었다.
데킬라.
입구에서 에디를 토큰으로 바꿔서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독점성은 개나 줘버린 셈.
대략 200명쯤 되는 인간들이 어슬렁거리며 술 마시고 떠들었다.
서로 피 터지게 싫어하는 라이벌 갱들이 한 공간에서 공존했다.
상대를 지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을 잠깐 숨기고 잡담을 나누며 ‘예술’을 감상하는 척했다.
그중 90퍼센트는 조각이랑 최신 보이테크 세탁기도 구분 못 할 것들이면서.
어쨌든 와서 누굴 얼굴에 총알을 박지만 않으면 됐다.
여긴 중립 지대이자 성지. 성지라니 여기서 그 단어를 쓰는 게 웃기긴 했다.
모든 시선이 ‘작가’에게 쏠려 있었다.
스프링 달린 키 큰 죽마를 신고 시체에 작업 중인 여자.
시체가 아니라 조각이라고 했던가.
레너는 속으로 비웃었다.
해골 문신이 박힌 피부색 짙은 스무 살대 여자는 맨티스 블레이드를 꺼내 들고 있었다.
그녀는 다음 ‘작품’의 몸통에 마름모 격자를 믿기 힘들 만큼 정확한 손놀림으로 새겨 넣었다.
피해자가 불쌍하냐고?
글쎄. 이미 죽었는데.
그녀는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잘라낸 인간 피부 조각을 피가 뚝뚝 흐르는 채로 뜯어내 뒤로 휙 던졌다.
군중이 서로 밀치며 그걸 받아내려고 날뛰었다.
군중 속 애니멀 하나가 포효했다.
더 피를, 내장을, 더 잔혹함을.
하지만 그들은 원하는 걸 못 받았다.
이건 ‘예술’이었다.
신체 절개는 도축이 아니니까.
몇 번 더
그녀는 격자 무늬 가장자리를 복잡한 소용돌이 장식으로 둘렀다.
그리고 승리하듯 팔을 치켜들었다.
깜빡이는 빛 속에서 블레이드에 묻은 검은 피가 번뜩였다.
군중이 박수쳤다.
쇼는 끝.
홀은 더 밝아졌지만 더 안쪽의 어둠은 그대로였다.
우아한 흰 제복을 입은 웨이터들이 동시에 은색 플래터 뚜껑을 들어 올렸다.
보기엔 그럴싸한 전채요리들이 드러났지만 맛은 그만큼 따라오지 않았다.
합성 향신료로 간한 합성 고기.
즉, ‘고급 스코프’라는 소리다.
라이토 케이터링 제공.
로고를 대놓고 박아두고 이 행사와 엮이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로스가 말했다.
"블레이드가 9피트 사거리라지만 결국 총싸움에 칼 들고 들어가는 거잖아. 내 말 알지?"
"근접전에선 실용적이지."
레너가 콧방귀를 뀌었다.
"꺼내는 데 0.2초도 안 걸려. 네가 조준하고 방아쇠 당기는 것보다 빨라. 근데, 씨발, 우리 왜 여기 있는지 다시 한 번만 상기시켜 줄래?"
"제안 하나 하려고."
덤덤이 말했다.
레너는 홱 돌아섰다.
그는 남이 자기보다 커 보이는 걸 싫어했다.
멜스트롬 놈은 레너보다 두 치쯤 더 컸다.
아마 그 촌스러운 무거운 전투 부츠 덕이겠지.
근처 프로판 히터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연기가 덤덤의 다중 옵틱스에 주황빛 줄무늬를 그었다.
"씨발, 할로윈 아직 아니거든?"
레너가 비웃었다.
"무슨 제안? 빨리 해. 배고파지려 하니까."
"밀리테크 호송대를 털었다며. 컨테이너 하나 빼돌렸고."
덤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 그대로 들고 있겠군. 판로가 없을 테니까."
레너는 잠깐 그를 뚫어지게 봤다.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워든한테 물어봐. 걔면 정리해서 설명해줄걸."
덤덤이 말했다
“너는 지금 꽤 큰 문제를 들고 있다고. 근데 내가 해결책을 줄 수도 있어. 이건 윈-윈 같은 거지."
그들 옆에서 칼라는 죽마로 또 한 번 멋지게 공중제비를 돌았다.
땀에 젖었는데도 웃고 있었다.
그녀는 군중 높이로 몸을 낮추고 낮게 인사했다.
덤덤은 그녀를 붙잡았다.
일부는 균형 잡아주려고 일부는… 다른 이유로.
칼라는 팔뚝의 슬릿 안으로 피가 스며들지 않게 맨티스 블레이드를 각도 맞춰 접었다.
얼굴의 흉터 그물 아래로 만족 같은 게 비쳤다.
레너는 그녀를 그리고 자기 소매 끝을 타고 흐르는 핏방울을 번갈아 봤다.
"이거 진짜 가죽이거든."
그는 냅킨을 집어 짜증 섞인 손길로 세게 닦아냈다.
"그건 진짜 피고."
덤덤은 부츠 한 짝을 소파 위에 올리고 몸을 기대었다.
"그래서, 어땠어?"
"인간 스시 시연 말이냐?"
레너는 1피트 반쯤 되는 블레이드를 약간 경계하며 바라봤다.
"예의 바른 답이랑 솔직한 답, 뭐가 필요해?"
"뭔 상관이야. 넌 둘 다 못 하잖아."
---
"제 건은 다 끝난 줄 알았는데요."
해리스가 말했다.
"그 생각은 어디서 나왔지?"
리암은 껌을 씹으며 정비소 주인을 똑바로 바라봤다.
의심해서가 아니었다.
해리스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확신이 얼굴에 너무 선명했기 때문이다.
"혹시 최근에 협박 받은 적 있어?"
"아, 난 웬만한 사람들하고 다 잘 지내요."
해리스는 최대한 태연한 척했다.
해리스 오토 리페어의 주인, 해리스는 쉰을 훌쩍 넘겼고 얼굴은 ‘다 잘 지낸다’는 말에 신뢰를 얹어주지 않았다.
키는 리암보다 작았다.
겉보기엔 임플란트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겉모습이 다가 아니었다.
이 동네 인간들 대부분이 그렇다.
둘은 경비 부스 뒤쪽 좁은 사무실에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직원들 중에 누가 위험한 놈 심기를 건드렸다거나… 빚이 있었다거나."
리암이 떠보듯 말했다.
"그런 건 몰라요."
정비소 주인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는 중요한 일이라도 남아 있는 것처럼 터미널을 계속 힐끔거렸다.
그는 중요한 일이 남아 있다는 듯 터미널을 계속 힐끔거렸다.
리암은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바쁘면 바쁠수록 좋았다.
불편해질수록 사람은 더 빨리 입을 여니까.
"그 새끼 이름도 몰랐다구요…"
해리스가 갑자기 말했다.
"경비 회사 쓰는 것보다 싸길래 야간에만 뽑았어요. 해 질 때 왔다가 새벽에 갔죠. 마주친 건… 세 번쯤인가."
사실, 해리스의 말투엔 짜증이 아니라 놀람이 섞여 있었다.
리암 같은 사람이 늙고 죽은 무명 인간 하나의 죽음에 진짜로 관심을 가진다는 게.
"경비비를 아낀다…"
리암이 의자를 끌어 앉았다.
"이상하게, 그런 건 한 번도 득이 안 되더라고."
해리스는 어깨가 푹 꺼졌다.
눈 앞에 있는 배지를 쉽게 떼어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얼굴이었다.
협박해서 내보낼 수도 없었다.
NCPD가 동네에서 가장 존경받는 족속들은 아니지만 거기 손대는 놈은 그 뒤가 지옥이다.
"봐요, 형사님…"
해리스는 마지못해 앉았다.
"왜 그런 일이…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나도 몰라요. 알겠죠? 훔쳐 간 것도 없고…우리 여기, 전엔 누구도 건드린 적 없었어요. 어쩌면 그… 뭐시기 얼굴이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었을지도—"
"존."
리암이 끊었다.
"당신 직원 이름은 존 스몰라르스키. 친인척 없음. 그 사람이 죽기 전 며칠 동안 이상한 점은 없었나?"
"음…"
주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떠오르는 건 없네요. 다 정상적이었어요. 뭐, 그 뭐시기가 죽은 거 빼면."
역시나 짜증이 아니었다.
뭔가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억지로 눌러 담고 있는 뭔가.
리암의 진단용 사이버웨어는 해리스의 심박과 혈중 코르티솔 수치를 계속 추적하고 있었다.
둘 다 높았다.
"밤에 차고에 혼자 오는 일은 잘 없지?"
해리스가 잠깐 머뭇거렸다.
"가끔은요. 보통은… 뭐 하나 놓고 와서."
"새뮤얼 바이어스. 그 사람이 밴을 맡겼죠."
해리스의 맥박과 혈압이 치솟았다.
코르티솔도 몇 초 뒤면 따라올 거라고 리암은 짐작했다.
"아, 기억 나죠… 그거 좀 오래 걸리긴 하네요."
몇 초가 지났다.
리암의 예상이 맞았다.
"들어오기 전에 그 밴을 좀 봤거든."
형사가 말했다.
"쉽게 고칠 물건이 아니던데. 부품값은 포함 300 받고. 너무 싸지 않나? 보통 찌그러짐이랑 스크래치 좀 나도 그 정도는 받잖아."
해리스는 듬성한 수염이 난 뺨을 긁었다.
완전히 길을 잃은 얼굴이었다.
"내가 보기엔 ‘다들하고 잘 지낸다’는 말이 영 안 맞아보이네..
리암은 씹던 껌을 쓰레기통에 퉤 뱉었다.
"이 동네는 말이야 누구나 누구한테든 뭐 하나씩 빚지고 살아. 나도 오래 봐서, 티 나는 건 바로 알아.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
“내가 질문 하나만 할 거야. 대답이 맞으면 다시는 내 얼굴 볼 일 없을 거고."
리암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스몰라르스키가 죽기 전날…그래, 물론 불법으로 말이지. 그 밴을 ‘빌려’ 간 사람이 있나?"
---
카부키.
씨발, 어디겠어.
론은 얻어맞아 찌그러진 SUV를 자신이 찾을 수 있는 한 가장 어두운 골목에 쑤셔 넣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태양이 서서히 물러나고 네온의 흐릿한 빛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아는 놈이야?"
조르가 물었다.
"그럼."
론이 차에서 내렸다.
"문자로나마 아는 거지. 그게 아는 거라면."
조르도 내려 허리 뒤쪽 권총을 더듬었다.
진짜로 상황이 더 좆같은 쪽이면 이게 도움이 될 리도 없었다.
그래도… 폼은 잡아야 했다.
그들이 선 건 한때는 차고였을 법한 입구 앞이었다.
불이라도 한두 번 난 듯한 세월에 처참히 쓸린 건물.
"네 임플란트가 스캐빈저들한테 얼마나 돈이 되는지 알지?"
조르가 말했다.
"소용 없거든."
론이 손을 들어 손가락을 움직였다.
"몸에서 떨어지면 작동 안 하는 거야."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스캐브들 표정이 볼만하겠네."
그들은 벽에 기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노숙자 옆을 지나쳤다.
진짜 자는 건지 자는 척하는 건지—겉으론 구분이 안 됐다.
쓰레기 층을 밟고 넘어가자 어두운 복도가 나왔다.
한쪽 끝은 번잡한 거리로 반대쪽은 작고 모양 좋은 중정으로 이어졌다.
위로는 5층짜리 발코니들이 둘러서 있었고 빨래가 널려 흔들렸다.
위쪽에서 아이들 뛰노는 소리, 이웃들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난간에 몸 내밀고 구경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운데 문."
론이 말했다.
손잡이가 달린 문은 하나뿐이었다.
손잡이는 삐뚤었고 문짝은 빛바랜 스티커로 덕지덕지—절반은 찢겨 나간 상태였다.
환영합니다, 씨발.
론이 망설였다.
노크를 할까, 그냥 들어갈까.
초인종은 없었다.
"기억해. 우리 프로처럼 행동하는 거야."
그는 손잡이를 잡고도 한 번 더 멈칫했다.
"알겠지? 우린 협상하러 온거라고."
그가 문을 밀었다.
안쪽은 사탕가게 흉내를 낸 잡동사니 창고였다.
문치스랑 릴루 빈즈가 담긴 유리병 위에 먼지가 두껍게 앉아 있었다.
손님이 거의 없다는 증거.
낮은 카운터 뒤에는 머리에서 원통형 옵틱스가 튀어나온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잠깐 그들을 올려다보더니 다시 금속 코스터처럼 생긴 물건을 더미로 쌓아 놓고 세는 일로 돌아갔다.
"문 닫았어."
"팝터드 사러 온 거 아니야."
론은 일부러 자신감이 과장된 목소리를 내며 드론 배터리 하나를 카운터 위에 탁 내려놨다.
코스터 더미 하나가 흔들리더니 툭 떨어져 아직 세지도 않은 더미로 돌아갔다.
가게 주인이 굳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시선을 들어 론을 봤다.
론의 ‘센 척’은 그 순간 증발했다.
"…예약 있어."
그는 변명하듯 말했다.
가게 주인은 둘을 훑어보더니 몸을 앞으로 숙여 정문 빗장을 걸었다.
그다음 아래로 손을 뻗었다.
딸깍, 소리가 났다.
선반 뒤쪽의 낡은 벽 일부가 옆으로 몇 인치 움직이며 숨겨진 문이 드러났다.
"따라와."
그는 카운터 뒤에서 몸을 비집고 나와 통로로 들어갔다.
키는 5피트 남짓.
통로 끝의 방음문은 벙커에 달아야 어울릴 물건이었다.
뒤쪽에서 단단한 메커니즘으로 보강되어 있었고 웬만한 힘으로는 꽤 오래 버틸 게 분명했다.
겉으로는 사탕가게.
안쪽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차가운 녹빛 형광등 아래 벽을 따라 큰 방 몇 개가 드러났다.
상자와 팔레트 랙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정리’에 신경 쓴 흔적.
선반에는 총기, 임플란트, 공구, 그리고 전문 BD 편집용 장비까지—별의별 것이 다 있었다.
더 안쪽엔 냉장 저장실이 이어졌는데 아마 바이오웨어를 보관하는 곳일 것이다.
가게 주인은 넓은 스테인리스 테이블에 몸을 기대었다.
그 위에는 케이블이 주렁주렁 매달린 기계 장치가 걸려 있었다.
“물건 좀 볼까?"
그는 론에게 손을 내밀었다.
론이 배터리를 건넸다.
가게 주인은 충전 소켓을 몇 초 동안 살피며 옵틱스 액추에이터가 윙 하고 울리는 소리로 정적을 갈랐다.
그는 위에서 늘어진 케이블 중 하나를 잡아 꽂았다.
모니터 몇 대가 켜지고 배터리의 작은 디스플레이도 불이 들어왔다.
"이거 진공관이나 전기 바이크에 맞게 개조 못 하는 건 알지?"
가게 주인이 중얼거렸다.
"상품성이 별로란 뜻이야."
"아, 곧 달라질 거야."
론이 억지로 들뜬 톤을 얹었다.
"시장에 던지면 시장이 따라와. 곧 다 이걸 쓰게 될 거라고. 그리고 이게 다가 아니야. 정확히 말하면… 179개 더 있지."
가게 주인은 고민하는 척을 했다.
눈썹을 과장되게 찌푸리고 한숨도 섞고.
이미 결론은 낸 얼굴이었다.
"좋아. 받지."
그가 마침내 말했다.
"대신 뭘 원해?"
"대신…?"
론이 눈썹을 들었다.
"음… 현금?"
"현금은 신뢰하는 손님한테만 줘."
가게 주인은 배터리를 그들 쪽으로 밀었다.
"…그럼 새 손님은?"
론은 진짜로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교환."
가게 주인이 주변 진열대를 가리켰다.
"아… 솔직히 우리는 현금이 필요해서…"
론이 말했다.
"조건은 그거야. 받을 거면 받고 싫으면 나가. 내 시간 낭비하지 말고."
가게 주인이 출구를 가리켰다.
"어떤 꼬마가 사탕 사러 들어올지 누가 알아. 실망시키고 싶진 않거든."
"우린 교환이 아니라 판매하러 온 거야."
가게 주인은 무표정하게 론을 봤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조르는 랙에 걸린 물건들을 훑고 있었다.
"제타테크, 내 거랑 비슷한데 더 신형 없냐?"
론이 팔을 들어 보였다.
"아니면 밀리테크 컴뱃 SRG. 최소 70부터, 그 아래는 고철이야."
가게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있는 것 중에서 골라. 내가 네가 얼마나 가져갈 수 있는지 말해줄게."
"어차피 다시 팔아야 할 걸 고르라는 거잖아."
론이 말했다.
"썩은 거래지."
"카부키 밖에서 훔친 코퍼 드론 배터리 팔아보겠다면…"
가게 주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맘대로 해."
"이거로 하지."
조르가 밀리테크 스코프가 달린 테크트로니카 저격소총을 가리켰다.
"상태는?"
"신품급."
가게 주인이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여기 있는 건 전부 그래."
론은 소총을 봤다가 조르를 봤다가 다시 소총을 봤다.
총열만 3피트는 되어 보였다.
"그게 왜 필요해?"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조르는 어깨만 으쓱했다.
가게 주인은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척 뒤로 물러났지만 엿듣기 좋은 거리 안에는 그대로 있었다.
"야…"
론이 더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
"우리 돈 만들려고 이 짓 한 거 맞지? 이 소총… 얼마에 팔릴 것 같아?"
"0."
조르가 말했다.
"근데 필요해."
"그래, 그건 알겠어."
론이 이를 악물었다.
"근데 이게 우리 둘만의 문제가 아니잖아. 나 돈 급해. 우리 다 급하고."
조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엔 제대로 계획해서 또 털자."
그가 말했다.
"근데 지금은 이 소총이 필요해."
---
"여긴 사유지입니다. 이이상 발을 들이시면 무단 침입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사유지는 저 문 너머지. 이쪽은 아직 공공 구역이야."
"지금 즉시 떠나지 않으면 강제로 퇴거 조치하겠습니다."
법적으로 리암은 신분증 제시를 요구할 수 있었다.
요구할 권한도 있었다.
밀리테크 병사는 헬멧 바이저를 올리고 신원을 밝힐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리암은 그 선택지를 바로 버렸다.
일어나지 않을 걸 알았으니까.
빈, 어둑한 거리 위에 서 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었다.
리암은 홀로 배지를 보여줬다.
병사는 고개를 아주 살짝 기울였다.
리암이 보기엔 대위쯤 될 것이다.
최소한, ‘공공 소유 토지’를 지키는 척하면서 선을 긋고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십쇼."
리암은 그 순간 확실히 느꼈다.
이 병사가 지키는 건 ‘공공 구역’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무단 침입자는 현장에서 사살’ 같은 경고문이 붙은 마당에 발 들여놓은 꼬맹이가 된 기분이었다.
게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일부가 새 금속처럼 번들거렸다.
최근에 수리한 흔적이었다.
이슬비가 내리며 저녁이 내려앉았다.
집에서 창문 너머로 보고 싶어지는 날씨였다.
곧 중년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움직임도 태도도 날렵했다.
짧은 회색 머리, 운동선수 같은 체형.
전직 군인.
리암이 예상 못 한 건 숯빛 수트였다.
그건 단 하나를 의미했다.
코퍼.
그것도 꽤 높은 자리.
남자 뒤로 병사 두 명이 따라나와 그의 양옆에 섰다.
"형사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는 조급함 한 점 없이 차분하게 물었다.
이름도, 계급도, 배지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이 남자에게서는 힘이 새어 나왔다.
리암은 깨달았다.
자기가 평소라면 가까이 갈 기회조차 없는 사람을 지금 마주하고 있다는 걸.
그저 시간과 장소가 맞아떨어졌을 뿐이었다.
순전히 우연.
"수사를 맡고 있습니다."
리암은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며 최대한 직업적으로 들리게 말했다.
"이 게이트를 들이받은 밴이 관련돼요. 정황상 강도 시도로 보입니다."
"우려는 이해합니다만 모든 상황은 저희가 통제하고 있습니다."
"NCPD와 밀리테크 모두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게 도움이 될 텐데요."
"가치 있는 건 아무것도 도난당하지 않았습니다."
기업 인간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변할 필요도 없었다.
리암은 그가 원하면 이 대화를 언제든 끝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씀드리죠. 오해는 하지 마시고, 형사님. 당신이 저희에게 쓸모 있는 정보를 갖고 계실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이 사건은 연쇄 살인입니다. 그중 하나가 여기 이 게이트로 곧장 이어지고요."
세상엔 굳이 말을 끊지 않아도 존재감만으로 주변을 조용히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 남자가 그랬다.
"유감입니다. 진심으로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나이트 시티의 살인율은 형사님도 잘 아시겠죠. 형사님 같은 분이 열 명이 있어도 그중 10분의 1이나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 해도 저는 이 사건을 해결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의무’는 여기서 끝내는 게 모두에게 이득일 겁니다."
남자가 부드럽게 말했다.
"괜한 수고와 두통을 줄이죠. 저희는 이 게이트 파손을 단순 기물 파손으로 처리할 겁니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섰다.
"실례하겠습니다. 저도 처리할 일이 있어서요. 안녕히."
리암은 근처에 세워둔 차로 천천히 걸어갔다.
방금 전까지 그는 NCPD 형사라는 사실과 상관없이 원하면 무슨 짓이든 해도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을 남자와 대화하고 있었다.
일종의 신.
그리고 그 신은 최대한 빨리 ‘사건 종결’ 칸에 체크하라고—그리 노골적이지도 않게—암시했다.
—
"타!"
워든은 활짝 열린 리무진 문을 봤다.
안에는 레너.
밖은 밤.
"나?"
"그럼 누가, 병신아? 타. 뭐 기다려, 씨발."
워든은 움직이지 않았다.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사를 똑바로 바라봤다.
"글쎄."
워든이 말했다.
"이유라도 알려주나 싶어서?"
"이새끼 진짜 맛이 갔나? 타라잖아!"
워든은 거리 끝을 힐끗 봤다.
원래는 걸어서 집에 갈 생각이었다.
걸으며 술도 깨고.
어차피 상관없었지만.
결국 그는 타기로 했다.
이어서 리무진이 다시 출발했다.
"내 뒤에서 멋대로 벌인 그 일 말이지…"
레너가 이번엔 조금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판이 커졌어. 우리 목까지 똥물이 찰 걸. 이게 네가 원한 그림이야?"
"내 쪽에 사람 하나가 실수를 한 것 같아."
"그럼 한 놈 실수로 전부 좆되는 거냐?"
레너가 몸을 돌려 워든을 정면으로 봤다.
"니미 씨발 그거 천재적인 발상이네. 아마추어를 굴려서 일 시키고 끝나면 다시 쓰레기 같은 인생으로 던져 버린다. 해 뜨면 다들 알게 생겼어."
그는 앞쪽 칸막이를 걷어찼다.
"로스! 밟아, 씨발! 여기가 학교 버스냐?"
리무진이 속도를 올렸다.
"니가 날 배제했잖아."
워든이 느리게 억지로 말했다.
"내가 시작한 걸 끝낼 기회도 안 줬고."
"그 시건방진 태도, 점점 더 열 받는 걸."
레너가 이를 갈았다
"네가 잠깐 벌이라도 서고 있는 건 줄 알아? 시간 지나면 내가 풀릴 거고?"
레너 손등의 십자가 문신이 실내 조명에 반사돼 번쩍였다.
"우리 지금 위기인 거 안 보여?!"
"안 보이지."
워든이 바로 받아쳤다.
"너가 나를 조직에서 쫓아냈으니까."
레너는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지금 뭐라고 소문이 도는 줄 알아?"
그는 애써 침착하려 했다.
"우리가 밀리테크에서 큰 거 하나 훔쳤대. 곧 밀리테크도 누가 했는지 알아낼 거고. 우리겠지. 즉, 우린 지금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있다고."
레너가 워든을 찌르듯 봤다.
"그래서, 안에 뭐가 들어 있어? 그 개좆같은 컨테이너 안에 뭐가 있냐고."
워든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몰라."
---
문이 싸구려 슬라이딩 힌지에서 통째로 뜯겨 나가 바닥에 처박혔다.
플라스틱과 금속 조각이 벽에 튀었다.
안쪽에서 비명.
어둠 속에서 잠옷 차림의 누군가가 커다란 부엌칼을 들고 튀어나왔다.
공포 영화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처럼.
차가운 LED가 켜졌다.
낡아빠진 경보 센서가 마침내 움직임을 잡아낸 것이다.
세 살,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둘이 그를 스쳐 지나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이제 막 나타난 아버지는 마흔대쯤 반쯤 잠에 취한 얼굴로 욕실 스툴을 들고 있었다.
무기라 부르기 민망한 물건.
아버지, 어머니, 아이 둘.
어디에나 있을 법한 가족.
"해치지 않아."
조르가 말했다.
"내 앞길만 막지 않으면."
하지만 어머니 쪽은 듣지 않았다.
그녀가 달려드려는 순간 손에 쥔 칼이 튕겨 나갔다.
아버지는 그걸 보는 순간 더 해볼 마음이 사라졌다.
승산이 없었다.
그는 아내를 끌어당겨 뒤로 물리고 아이들을 몸으로 가렸다.
"원하는 게 뭐야?"
그가 낮게 물었다.
조르는 주변을 둘러봤지만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뭔가가 그를 여기로 끌어당겼다.
그게 뭔지, 왜인지도 모르면서.
작은 방에서 새어 나온 희미한 불빛 속 가족은 구석에 웅크린 채 떨고 있었다.
정상적으로라면 노크를 했겠지.
하지만 그러면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조르는 문에서부터 벽을 따라 자기 팔뚝 길이 세 번을 재고 있는 힘껏 주먹을 꽂았다.
둔탁한 소리.
석고가 갈라졌다.
건물은 낡았고 벽돌이 많았고 구조도 허술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쳤다.
석고 부스러기와 먼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건 안 된다.
반나절은 걸릴 테고 손도 박살날 것이다.
조르는 칼을 집어 들고 벽을 계속 찔러댔다.
가족은 눈을 크게 뜬 채 공포에 질려 그를 바라봤다.
말릴 엄두도 못 냈다.
어린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스무 번째 찌름에서 석고 아래의 주황색 세라믹 타일이 깨졌다.
한 번 더 찌르자 무광 검은 금속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칼을 내리칠수록 안에 뭐가 있는지 기억이 점점 또렷해졌다.
그 뒤는 쉬웠다.
조르는 찌그러지고 먼지에 뒤덮인 금속 서류가방을 끄집어냈다.
손이 떨렸다.
그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 가장 가까운 역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
회색 컨테이너는 그대로 있었다.
강철문 뒤. 암호는 레너만 알고 있었다.
"누가 일을 줬는지 말해."
둘뿐이었다.
로스는 위층에서 다른 갱들이 지하로 내려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몰라."
레너는 눈을 감고 이를 갈며 욕을 씹어 삼켰다.
"씨발, 변명거리라도 좀 짜 와."
레너가 말했다.
"뭘 훔쳤는지도 모르고 누구 일인지도 모른다고? 그럼 물건은 어떻게 넘길 생각이었는데?"
"안 넘겨."
워든이 말했다.
"클라이언트는 컨테이너가 ‘사라지길’ 원했으니까."
"사라져? 장난하냐? 지가 원하지도 않는 걸 훔치라고 돈을 줬다고?"
"아무도 못 찾을 곳에 숨기라고만 했어."
워든은 취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느끼는’ 건 이제서야였다.
그래서인지 레너가 뭘 하든 상관없었다.
긴장도 되지 않았다.
"안에 뭐가 들었을지 누가 알아."
레너가 말했다.
"23년처럼 이 동네 절반을 궤도로 날려버릴 폭탄일 수도 있어."
밀폐 컨테이너는 속내를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열어보던가."
워든이 말했다.
물론 자물쇠를 억지로 건드리는 건 극도로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레너가 말을 잘랐다.
"이렇게 한다. 넌 나를 위해 한 가지를 해. 이번엔 한 치도 어기지 말고—병신 같은 발상도 말고."
레너가 워든을 얼음처럼 노려봤다.
"네가 꾸린 멍청이 갱 새끼들 여기로 끌고 와. 방법은 네가 알아서 해. 우린 놈들 뇌수 바르는 걸 직접 찍고 컨테이너를 ‘발견’한다. 그리고 밀리테크에 돌려줘. 우리가 씨발 ‘도움’ 줬다고 고맙다 하겠지."
레너가 낮게 말했다.
"좆되게 하면 이벽에 튀는 건 네 뇌야. 알아들었지?"
---
조르는 수술용 서류가방을 수술 의자 위에 툭 올려놓고 열었다.
론은 한 번 보고 휘파람을 불었다.
"야, 이거 크롬 끝내주네. 최신형은 아니어도 프리미엄 티어는 확실하고. 상태도 괜찮아. 꽤 값 나가겠는데."
론이 말했다.
"카부키 사탕가게 그 놈한테 가져가서 바꿀까?"
"나한테 박아줘."
"이게 군용 웨어인 건 알지?"
론이 뒤통수를 긁었다.
"특정 DNA에 등록돼 있어. 제조사 코드 없으면 네 프로필에 동기화하는 건 불가능해."
"DNA는 내 거야. 예전엔 제복 입고 살았거든."
"그래, 근데 너 그냥 말단은 아니었겠다."
론이 조르를 훑었다.
"이걸 지금까지 갖고 있었어?"
"…모르겠어."
조르가 말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기억이… 뭔가가 꼬여 있었어. 군 심리의한테 상담이라도 받으면 더 잘 말해주겠지."
"근데 왜 뽑은 거야?"
론이 말했다.
"군대는 전역했다고 크롬을 떼어가진 않아. 게다가 그걸 떼면 생길 문제도 한둘이 아니고…"
"난 전역한 게 아니야."
조르가 날 선 시선으로 론을 찍었다.
"할 수 있어, 없어?"
론은 잠깐 크롬을 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쉬운 수술은 아니야. 그래도… 가능은 해."
그가 한숨을 쉬었다.
"몸이 완전히 적응하는 데 일주일쯤 걸릴 거야."
"24시간으로 줄여줘."
"미쳤냐?"
론이 튕기듯 받아쳤다.
"이건 최소 일주일이야. 추가 나나이트 투여도 들어가고. 면역억제제도 써야 하는데—참고로, 나 그거 많이 남아 있지도 않아."
잠깐 정적.
"순서."
론이 말했다.
"뭐?"
"뭘 먼저 박아달라는 거야. 어디부터 시작해?"
"전부."
론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을 빼먹었네."
론이 말했다.
"너, 진짜 살아서 나올 생각은 있냐? 크롬은 단계적으로 박는 데 이유가 있어. 강한 약도 같이 쓰면서 조금씩. 하나 박고 일주일, 길면 이주씩 간격 두고."
론이 고개를 저었다.
"뇌가 적응하고 학습할 시간이 필요하거든. 한꺼번에 박으면? 그래. 24시간 뒤엔 ‘사이보보그 슈퍼맨’이 될 수는 있지."
그가 혀라도 씹듯이 말했다.
"대신 너, 사이버사이코 된다."
조르는 설득될 얼굴이 아니었다.
"조직 재생은 네가 맡아줘."
조르가 말했다.
"사이버사이코시스는 내가 감당할 테니."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더 낮게 덧붙였다.
"난 이 크롬이 필요해. 몇 년째 밤잠을 뺏어간 일을 끝내야 하거든."
론은 팔짱을 꼈다.
"좋아. 네 마음대로 해."
론이 말했다.
"나중에 내가 경고 안 했다고만 하지 마."
그는 냉동고 뒤쪽 샤워실 문을 가리켰다.
"먼저 씻고 와. 비누로 전신 다 문질러. 전신. 손톱 밑까지."
론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다 끝나면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알겠지?"
"문 잠궈?"
조르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론은 입구 쪽을 흘끗 봤다.
"그래, 당연하지. 항상 잠가."
론은 수술 의자의 전원을 올리고 패널에서 절차를 이미 세팅하기 시작했다.
필요한 프로그램은 전부 들어 있었다.
군용 크롬의 장점은 좀 구식이라는 점이었다.
소켓, 커넥터.
전부 더 두껍고, 더 튼튼하고, 더 잘 버텼다.
구식 사이버암으로도 거뜬했다.
조르가 욕실 문을 닫고 들어가자마자 론은 현관으로 가 문을 잠갔다.
그는 서류가방을 책상으로 옮기고 터미널을 켰다.
맨 위에 놓인 반사 신경 부스터 모델을 찾아보는 순간 눈이 커졌다.
"어디 보자…"
밀리테크 공식 가격이 20만이라면 암시장에선 최소 두 배다.
임플란트들도 아마 비슷하겠지.
리퍼닥은 허리를 곧추세우며 감탄했고 물소리가 들려오는 욕실 쪽을 흘끗 봤다.
이 서류가방 안의 것들은 작은 재산 하나가 아니라 작은 재산이 통째로 들어 있는 셈이었다.
수술 의자가 자동 소독을 시작했다.
톡 쏘는 냄새가 방 안을 훑고 지나갔고 론은 매번 수술 전에 느끼던 그 들뜬 기대감을 그대로 다시 느꼈다.
수술이 어려울수록 그 감각은 더 강해졌다.
조르가 알몸으로 욕실에서 나왔다.
지시를 기다릴 생각도 없이 곧장 의자에 누웠다.
매니퓰레이터가 살아나더니 리퍼닥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는데도 정확한 소켓에 꽂히고 정확한 정맥에 바늘을 찔러 넣었다.
"이거, 얼마나 전에 뽑았어?"
론이 조르의 어깨에 난 새 흉터 위로 몸을 숙이며 옵틱스를 매크로로 맞췄다.
"몇 년 전."
리퍼닥의 미간이 아주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는 몇 초 동안 꼼짝도 하지 않다가 눈을 감고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천천히 꺼질 거야."
론이 콘솔 버튼 몇 개를 눌렀다.
"그리고 깨어나면… 거의 슈퍼솔저지. 정신이 멀쩡할지는 그때 가서 봐야 하고."
그는 말을 이어갔다.
"봉합은 어느 정도로 할까? 임플란트 사이에 시간이 많지 않아서 흉터는 최대한—"
"흉터는 잊어."
조르는 이미 의식이 가라앉고 있었다.
지친 몸이 마취가 더 잘 먹게 만들었다.
"대신… 꿰맨 건 튼튼하게."
진단 화면이 마취제가 전량 투여됐다고 확인했다.
곧 안정화가 잡힌다.
그러면 론은 작업에 들어가면 된다.
이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손을 소독해야 했다.
그런데 론은 얼굴이 창백해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이 서류가방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분명 저 크롬을 본 적이 있다.
거의 확신했다.
그런데… 어디서?
---
"난 직접 만나는 게 좋아."
스탠리는 정장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늦은 시간이더라도."
그가 잠깐 멈췄다.
"웃기지 않아? 어떤 기술도 결국 대면 대화를 완전히 대체하진 못한다는 게."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린 거래를 했지, 워든. 아주 단순했어. 컨테이너를 훔쳐서 흔적도 없이 처리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넌 정확히 반대로 해냈더군. 이제 도시 전체가 그 얘길 알고 있더라고."
"제 마음대로 굴릴 수 있는 입장이 아녔어요."
워든이 말했다.
"상사의 신뢰를 잃었거든요. 그래서 일이 제 손을 떠났죠."
"남은 대금을 받으면 신뢰는 돌아오겠지."
스탠리가 말했다.
"그러니 컨테이너와 그 안의 내용물—이번엔 정말로, 완전히 사라지게 해."
---
"우리 순찰 드론 중 하나의 녹화 영상이에요. 랜덤 루트로 비행하죠—물론 퍼시피카는 피하는 편입니다. 거긴 애들이 재미로 총을 쏴대거든요."
"애들이 아니라, 불량배들이라고 해야겠지."
"그래요, 뭐든."
상대가 시큰둥하게 이어갔다.
"그래도 그 새끼들은 기업 드론은 안 쏴요. 그건 되쏘거든요.
"아, 노스사이드도 루트에 빠져있어요. 근데 이유는 퍼시피카랑 다르고."
야간 녹화에는 카부키에서 노스사이드로 이어지는 도로가 찍혀 있었다.
형사는 화면 일부를 확대했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바이어스 앤드 선 밴 한 대가 노스사이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멀쩡한 상태로.
"번호판이 안 보여요."
신참이 말했다.
"그쪽 밴이면 아무거나일 수도 있잖아요."
"우리 장비가 구린 건 맞아."
리암이 설명했다.
"근데 차 옆면 번호를 못 볼 정도로 구리진 않지."
신참은 속으로 자신을 탓했다.
13은 크지 않았지만 분명 읽혔다.
"그래도 아직 증거는 아니야."
형사가 덧붙였다.
"누구든 밴에 번호 하나 붙일 수 있으니까."
그가 말을 이었다.
"근데 거의 1분 뒤 이 동네 CCTV가 다운됐지."
"화재 났던 거 아니에요?"
신참이 떠올렸다.
"그걸로 쇼트 났을 수도—"
"불은 카메라가 꺼진 뒤에 났어."
형사는 껌 두 조각을 입에 넣었다.
"우연일 수도 있지. 사실 지금까지 맞춰진 것 전부가 우연일 수도 있어."
그는 씹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우연이 너무 많아지면 그건 우연이 아니야. 다른 영상들도 확인했거든."
그들은 NCPD 강력계의 북적이는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리암 책상 옆 쓰레기통엔 구겨진 종이 커피컵이 가득했다.
"어제 집은 갔어요?"
신참이 물었다.
형사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 밴 안도 봤어. 누가 싹 닦아놨더라."
리암이 말했다.
"아마 암모니아랑 과산화수소로 핏자국을 밀어낸 것 같아. DNA가 하나도 안 나와."
"조르랑 아야…"
신참이 생각을 소리로 흘렸다.
"밀리테크 창고를 털고 경비원을 죽였고 여자 둘도요. 몰리 버나드랑 엘레나 딜레이니."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이해가 안 가요. 왜 하필그 밴을 썼죠? 잡히고 싶어서 일부러 그러는 것 같잖아요."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물어봐. 이제 첫 체포영장 낼 때도 됐지."
챕터 9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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