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찰칵. 찰칵. 여전히 안 맞는다.
뭐든 다 그렇다. 지금 이 꼴도.
애초에 여기 있을 인간이 아니었다.
여기 있고 싶지도 않았고.
좆같이 퍼붓는 빗속에서 벽이랑 덤프스터 사이에 쪼그려 앉은 신세였다.
그래도 하나는 쓸 만했다. 비.
시야를 줄이고 자연스럽게 몸을 숨겨 주니까.
그래, 비는 계속 와도 괜찮을 것 같다.
찰칵. 찰칵. 여전히 안 물린다.
옷은 이미 속까지 흠뻑 젖었다. 거슬렸지만…
원래라면 이미 죽었어야 할 놈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조르는 칠 년 전에 죽었어야 했다.
그 뒤로는 그냥 덤으로 사는 시간일 뿐.
완전히 잿빛이 된 하늘에서 잿빛 빗물이 쏟아져 내렸다.
버려진 키블 공장의 윗층들은 회색 허공 속으로 녹아 사라져 가고 그 너머로 페트로캠 "베터라이프" 발전소의 하부 구조물이 겨우 윤곽만 드러낸 채 서 있었다.
아로요. 나이트 시티 안에서도, 결코 정겹다는 소리 들을 동네는 아니었다.
행인 몇이 허겁지겁 비를 피해 그의 앞을 뛰어 지나갔다.
이쪽을 힐끗 보는 놈도 없었다.
무심한 차들이 기름 뜬 웅덩이를 가르며 지나가자 물이 튀었고 더러운 물이 인도 위까지 와르르 쏟아졌다.
여기서 통째로 사라져도 아무도 눈치 못 챌 것 같았다.
찰칵. 찰칵. 진짜 장난하냐.
그는 손에 쥔 탄창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거꾸로 끼우고 있었다. 병신 같게.
이딴 기본조차 까먹을 만큼 칠 년이라는 시간은 길었던 것이다.
몸이 먼저 기억하던 것들도 끝내 버티지 못할 정도로.
찰칵. 이번엔 제대로 물렸다. 이제야 출발선이다.
그래도 상황이 나아진 건 없다.
이 작전이 먹힐 확률… 이 멤버로는 지옥에 눈이 내릴 확률보다도 낮았다.
백 번에 한 번? 천 번에 한 번?
기껏해야 기분 더럽게 좋게 잡아도 다섯 번 중 한 번인데 그 숫자로는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30초 남았어."
합성된 목소리가 이어피스를 타고 귓속을 때렸다.
여기 있고 싶지 않다—이딴 짓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성공할 리도 없었으니까.
조르는 서브머신건을 쥔 자기 두 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은 결국 여기뿐이라는 걸.
다른 때, 다른 어디에서도 이만큼 딱 맞아떨어지는 자리는 없을 거라는 걸.
비, 덤프스터, 그리고 총.
그리고, 다른 선택지는 없다.
"이십 초. 대기. 타깃 접근 중이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예비 탄창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돌려 쥐었다.
한 손은 권총 손잡이를 다른 손은 전방 손잡이를 감쌌다.
하는 법이 다시 떠올랐다. 대충은.
칠 년이라는 세월은 사람을 갉아먹는다.
그 사이에 한 번 죽기까지 했다. 자기 자신이.
비가 커튼처럼 쏟아지는 사이로 네모 반듯하고 낮게 깔린 트럭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겉보기엔 장갑까지 둘러친 놈.
그 정면 열두 시 방향에는 평범한 포도어 승용차 한 대가 깍지처럼 끼어 따라가고 있었다—
아마 이쪽도 보강은 돼 있을 거다.
이 총알로는 흠집 하나도 못 낼 테지.
조르는 숨은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맞은편 차선은 공사 때문에 파헤쳐져 막혀 있었고 양방향 차량들이 한 차선 안에서 엉겨붙어 지나가고 있었다.
원래라면 경호팀이 이런 상황에선 더 조심했어야 했다.
우회로를 돌든가 아예 다른 길을 택하든가.
하지만 그들은 그냥 섞여 들어가는 쪽에 걸었던 모양이다—
트럭도 앞에 선 승용차도 어디 소속인지 보이는 마크 하나 없었다.
길 가는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평범한 차 두 대였을 것이다.
"조르! 지금이야!"
목소리가 명령을 내렸다.
조르는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짧은 연발음이 인근 건물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
주변에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행인들은 그나마 있던 그림자까지 싹 지워 버리듯 사라졌다.
이제 경호원들도 모를 리가 없었다—호송대의 위장은 완전히 날아갔다.
짧은 탄막이 앞차의 장갑을 뚫고 엔진을 못 쓰게 만들어 버렸다.
생각보다 작은 서브 머신건이 그래도 제 몫은 한 셈이었다.
조르는 놀란 눈으로 손에 쥔 총을 내려다봤다.
밀리테크 M221 "사라토가"는 겉만 번지르르한 철덩어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텅스텐 탄이 내는 높은 탄속 덕분에 웬만한 경장갑 따위는 금방 갈가리 찢어버렸다.
물론 몇 번만 더 갈겨대면 총 자체가 맛이 가버리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비가 그쳤다.
보닛 아래에서 쉬익-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수증기일 수도 연기일 수도 있었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트럭은 인도에 분필로 그려 둔 X표 바로 코앞에서 멈춰 서 있었다.
퍼부어대던 빗물에 거의 지워졌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지진 않은 표식.
완벽한 병목 구간이었다—계획대로.
낡은 "쿼드라" 쿠페 한 대가 트럭 바로 뒤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뒤로 빠져나가려던 트럭이 그대로 스포츠카의 펜더를 들이받았다.
키 크고 마른 여자가 쿼드라에서 내려 찌그러진 부분을 살폈다.
짧은 흑발, 하이힐, 잘 맞는 정장.
도로 위에 울분 풀기엔 최악의 타이밍에 최악의 장소에 걸려든 기업 인간이었다.
-
대체 왜 안 내려오는 거야?
워든은 접이식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이고 모니터에 비친 상황을 훑어봤다.
오른쪽 아래 구석의 디지털 시계가 뱃지들... 그러니까 경찰이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을 깎아 내리고 있었다.
고작 예상 도착 시간(ETA)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신경 쓰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고층 건물들은 비 속에서 유령 같은 거대한 기둥처럼 떠 있었다.
비는 분명 도움이 됐다. 그렇다고 계획이 꼭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언제까지 버티다 들킬까? 추적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헤이우드 남쪽, 공사만 해 두고 방치된 아파트 블록 33층.
매복 지점에서 꼬박 두 마일은 떨어져 있었다.
일이 죄다 좆돼 버렸을 때 튈 수 있는 넉넉한 거리였다.
길어야 2분.
모듈식 군용 장비를 전부 분해해서 서류가방에 쑤셔 넣는 데 그 정도면 충분했다.
넷러너는 얘기가 달랐다.
잔해가 널린 콘크리트 바닥 위로 케이블 다발이 거미줄처럼 얽혀 욕실 쪽으로 뻗어 있었고 욕실 안에서 그 선들은 하나로 모여 넷러너의 귀 뒤 뉴로포트에 꽂힌 밀폐 커플링으로 이어져 있었다.
놈은 목 아래 전부 얼음 슬러시로 가득 찬 욕조에 담긴 채 누워 있었고 뇌는 여러 작업을 동시에 돌리고 있었다.
그중 최우선은 경찰과 보안팀의 대응을 최대한 늦추는 일.
하지만 이 넷러너는 한 가지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게 자기 목숨을 건 시간 싸움이라는 것, 딥다이브에서 빠져나오는 일조차 순식간에 끝나는 법은 없다는 것.
욕조 곁을 지키고 있던 워든이 권총을 뽑아 들었다.
금빛 장식이 들어간 은색 "쓰나미 누에".
탄약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했다.
이 작전의 내막을 이 정도로 꿰고 있는 이 넷러너를 원래 같았으면 그냥 살려두면 안된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이번 작전 전체가 욕조에 반쯤 잠겨 있는 이 넷러너의 어깨에 달려 있었으니까.
워든은 다시 모니터를 확인했다.
대체 뭘 꾸물대는 거지?
"계획 변경이다—우리가 먼저 끌어낸다."
그가 오픈 채널로 말했다.
"밀레나, 일단 물러서."
그녀의 연기는 마치 교과서급 기업 히스테리였다.
팔을 마구 휘저어 가며 트럭 기사에게 쌍욕 섞인 고함을 퍼붓고 보험사가 어딘지 대라며 자기가 얼마나 좆같이 당했는지 똑똑히 알게 해 주겠다는 몸짓.
하이힐, 정장—딱 기업 사람의 샘플처럼 생겼다.
아니, 너무 완벽할 정도였다.
1분 전 들린 총성 정도는 일부러 잊은 척하는 모양새.
그녀는 분필로 그려 둔 X 한가운데 서 있었다.
워든의 사선 바로 바깥, 안전지대.
그러다 세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밀레나, 다시 말한다—물러서."
아직도 연기 중이거나 진짜로 못 들었거나.
청각 배제. 거기에 스트레스까지 끼어들면, 들려야 할 것들이 귀에서 통째로 증발한다.
"론, 쏴 갈겨."
워든이 통신으로 쏘아붙였다.
"밀레나는? 맞을 수도 있잖아."
"계획을 어기면 다 같이 맞을걸."
"잠깐만."
조르는 가능하면 아무도 안 맞는 쪽이 훨씬 좋았다.
"각도 잘 나왔어."
그는 "사라토가"를 반자동으로 전환하고 차를 향해 한 발만 쐈다.
후드 위로 보기 흉한 상처 하나가 깊게 그어졌다.
문이 열리며 경호원 셋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어설픈 발놀림으로 보아 풋내기들이었다.
전부 밀리테크 제복에 딱 최소한의 제식 무장만 걸친 수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라면 마음만 먹으면 둘은 바로 눕힐 수 있었다.
아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다.
밀레나는 워든의 지시도 조르의 총성도 못 들은 것 같았다.
여전히 운전사를 갈궈대며 피 끓는 이탈리아 프리마돈나처럼 기사와 자기 앞 펜더를 번갈아 가리키며 고함을 질러댔다.
마침내 트럭 운전석 문이 열렸다.
"아야! 네 차례야!"
워든의 목소리였다.
딱 보기에도 티가 났다.
기둥 뒤에 숨어 있던 동아시아계처럼 생긴 마르고 잽싼 여자는 이런 류의 작전에 익숙한 타입이 아니었다.
수류탄 발사기를 만지작거리며 한참 헤매더니 곧 먹먹하면서도 익숙한 푸욱! 소리가 나고 이어서 쉭—하는 특유의 가스 새는 소리가 뒤따랐다.
트럭 창문들 사이로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만큼은, 완벽한 사격이었다.
"보그 차례!!"
왼쪽에서 짧은 연발이 터지고 연무 속에서 그림자 둘이 비틀거리며 튀어나왔다.
대부분의 탄환은 회색 장막 속으로 빨려 들어갔지만 한 발이—아마도 우연히—제대로 맞아 들어갔다.
운전수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두 번째 경호원은 재빠르게 옆으로 몸을 빼더니 커다란 뒷바퀴 뒤로 몸을 숨겼다.
"조준 제대로 해!"
그다음 연발은 젖은 아스팔트만 긁고 지나갔다.
보그의 사격 실력은 한마디로 개판이었다.
하이힐 굽 소리가 타닥타닥 울리며 밀레나가 건물 모퉁이를 돌아 뛰어나오더니 연막탄을 하나 더 던졌다.
연막탄은 큰 호를 그리며 거리를 가로질러 날아가 가로등을 금속성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스치고 나서 조르 코앞,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떨어졌다.
젠장. 진짜 조준이란 걸 하긴 한 건가?
다시 한 번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연막탄에서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거리 쪽 시야가 반쯤 가려졌다.
아야가 트럭을 향해 한 번 갈겨 쐈다.
아마 인생 통틀어 방아쇠를 제대로 당겨 본 건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백 피트도 안 되는 거리인데 소리로 짐작해 보건대 총알은 하나도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
공격하는 쪽의 위치를 보지 못한 제복 차림 경호원 셋이 차 뒤에 숨은 채 마구잡이로 난사하기 시작했다.
넷째 놈은 트럭 뒷바퀴 뒤에 웅크리고 있다가 인도 쪽 폐차된 불탄 차 뒤에 몸을 숨긴 아야를 발견했다.
"아야! 엎드려— 당장 엎드려!"
조르가 마이크에 대고 고함쳤다.
그가 소리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아야는 재빨리 몸을 낮췄다.
이어지는 중기관총 사격이 차체를 종잇장처럼 뚫어버렸다.
밀레나의 쿼드라는 애초에 방탄 차량이 아니었다.
그래서 딱 한 시간 전에 실내에 방탄 패널을 덧대 놓았던 것.
그게 지금 제 역할을 해냈다.
"아야, 엄폐 밖으로 나가지 마."
조르가 경고했다.
저 셋은 나중 문제였다.
하나씩 처리해야 한다.
경호원 하나가 트럭 뒷바퀴 뒤에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문제는 모습이 안 보인다는 거였다.
조르는 트럭 타이어를 겨냥하고 세 발을 쐈다.
위, 가운데, 아래.
반동 때문에 손목이 욱신거렸다.
노리쇠가 헐거워졌다.
이러다가는 걸리거나 아예 통째로 박살 나버리겠지.
애초에 총알이 적중 된 곳은 고무 타이어뿐이었다.
큰 의미는 없었지만.. 대신 이제 나머지 놈들이 그가 어디 숨었는지 정확히 알게 됐다.
조르 머리 위로 총알 몇 발이 스쳐 지나가며 머리맡 벽에서 시멘트 가루가 푹푹 튀어 올랐다.
연막탄이 결국 그의 구세주가 되어 줬지만 그렇다고 한 치라도 더 몸을 내밀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몇 초가 흘렀다.
어느 쪽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교착 상태였다.
"엄호 좀!"
아야가 통신으로 외쳤다.
그녀가 엄폐에서 몸을 튕겨 내보냈다.
"아야—!"
조르가 불러 세우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몸을 살짝 내밀고 몇 발을 갈겨댔다.
맞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냥 적들 머리 숙이게 만들려는 견제 사격에 가까웠다.
아야가 쿼드라의 지붕 위로 올라탄 뒤 그대로 트럭 지붕 쪽으로 뛰어올라 몸을 끌어올렸다.
어지간한 군인보다 두 배는 빠른 동작이었다.
공기를 가르는 소총 연발 몇 줄기가 스쳐 지나갔지만 아야는 옆으로 몸을 틀며 이동 사격으로 세 발을 가까이서 박아 넣었다.
경호원은 그대로 힘이 쭉 풀린 채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론!"
워든이 명령을 내렸다.
"이제야? 잠들 뻔했네."
어디 1층 창문 뒤에 숨은 자리에서 중기관총 특유의 묵직한 "둥, 둥"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도 콘크리트 파편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고 소화전이 터지면서 물줄기가 치솟았다.
도로 공사 구역을 감싸고 있던 바리케이드들이 산산조각나 쓸려 나가더니 부서진 잔해 더미 위로 우르르 쓰러졌다.
멀리서 유리 깨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최소 삼백 피트는 떨어져 있을 창문들이었다.
그런 난사 속에서도 마크 하나 없는 승용차는 기가 막히게 멀쩡했다.
"와아."
밀레나였다.
"명중률 기가 막히네…"
"야, 나도 이런 거 오늘이 처음이거든?!"
경호원들은 차 뒤에서 꼼짝 않고 더 이상 사격을 하지 않았다.
아주 작은 승리, 그 정도는 챙긴 셈이었다.
"아야!"
조르가 불렀다.
"이쪽이야!"
아야가 폐차를 훌쩍 뛰어넘어 금세 조르가 숨어 있는 곳까지 달려왔다.
조르는 그녀를 붙잡아 자기 뒤로 끌어당겼다.
"고마워."
그녀는 등을 벽에 딱 붙이고 긴 머리를 뒤로 한 번 질끈 넘긴 뒤 자기 총을 확인했다.
어깨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디 한번 봐."
조르가 그녀의 팔을 조심스레 잡아 상처를 살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상처는 아니었다.
"별거 아냐."
아야가 어설프게 재장전을 시도했다.
"론!"
조르가 다시 마이크에 대고 불렀다.
"알고 있어, 들어간다!"
짧은 연발, 대략 다섯 발.
그중 세 발이 정확히 들어갔다.
승용차는 마치 폭죽으로 터뜨린 깡통처럼 산산이 벌어졌다.
경호원들이 몸을 숨길 엄폐물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놈들은 바로 뒤로 물러났다.
"엄폐해!"
워든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은 가려!"
조르는 덤프스터 뒤로 몸을 날리듯 숨고 아야를 손으로 밀어 벽 쪽으로 더 붙였다.
"총은 꼭 엄폐 뒤에 숨겨."
그가 단단하게 말했다.
한편 욕조 속 넷러너의 의식은 전혀 다른 공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실시간으로 모든 요소를 재구성하고 자기 취향에 맞게 인터페이스를 뜯어고칠 수 있었다.
자기만의 사이버스페이스, 자기 취향대로 만든 공간.
넷러너마다 각자 선호와 버릇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는 정돈된 걸 좋아했다.
군더더기 없고 방해되는 건 싹 걷어낸 상태.
밝기를 조정하고 글자 읽기 좋게 색을 갈아 끼우고 들어오는 데이터를 폭포처럼 쏟아지게 보여주던 애니메이션 같은 건 통째로 날려버렸다.
아로요 작전 자체에는 딱히 큰 관심도 없었다.
그냥 게임 한 판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자기 사이버덱만 가지고도 이 정도 일은 거뜬히 처리했다.
그래도 이번 작업 때문에 지급받은 장비는 확실히 한 급 위였다.
세상이 통째로 손아귀에 들어온 느낌.
현실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것 같은 감각이었다.
게다가 보그가 넘겨준 코드들도 죄다 문제 없이 돌아갔다.
아로요 이 일대 교통 신호는 전부 그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그는 자신이 짜놓은 컨트롤룸 안을 떠다니듯 움직이며 불쑥 치밀어 오른 기쁨에 몸이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핵심 요소들은 세부 카테고리로 나뉘어 그의 위아래, 사방으로 핀처럼 꽂혀 있었고 수백 개의 기호와 아이콘이 뒤엉켜 만든 비정형 구체 한가운데 그는 공중에 매달린 채 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바깥 경계 따위는 없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두꺼운 블랙 아이스 층이 그 전부를 감싸고 있었다.
이제 다음 단계.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이곳의 시간은 바깥이랑 다르게 더 느리게 흘렀다.
조르가 덤프스터를 향해 내달리는 모습은 마치 바깥 세계 전체가 끈적한 기름 속에 잠겨 있는 것처럼 느리게 보였다.
로컬 CCTV를 틀어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관제센터의 기술자들은 지금쯤 경보가 왜 울렸는지 원인을 찾느라 발광을 하고 있겠지만 그 경보가 애초부터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거라는 사실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는 자신의 넷인덱스 범위를 구역의 절반을 덮을 만큼 넓혀 잡았다.
이 임시 도메인에 딱히 불청객이 기어들어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들어올 수 있는 포인트에는 전부 삼중 암호화를 씌워 뒀다.
보안 전문가 서넛은 커녕, 여섯은 붙어야 그의 정확한 위치를 역추적할 수 있을 거다.
그마저도 간신히 침입자의 좌표를 특정했을 무렵이면 그들이 마주하게 될 건 차갑고 새까만 빈 공간뿐일 테고.
그는 원래 단순한 걸 좋아했다.
왼편에는 직육면체 둘이 공중에 떠 있었다.
커다란 빨간 버튼 두 개.
기폭 장치였다.
생각으로 명령을 내리자 비물질의 손으로 신경 자극이 흘렀고 그 손가락이 두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쓰레기가 잔뜩 쌓인 도로 배수구 틈에 숨겨 둔 EMP 두 발이 작동하면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짧게 삑— 하고 울었다.
조르의 서브 머신건 탄약 표시가 잠깐 깜빡였다.
나머지는 전부 멀쩡해 보였다.
원래 기계식이라 그럴만도 했다.
그는 아야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하는 걸 눈치챘다.
젖은 옷 너머로 그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보그가 오른쪽에서 사격을 개시했다.
눈에 보이는 건 죄다 갈겨대는 수준이었다.
"EMP, 우리한텐 아무 영향도 없어."
조르가 일부러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야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쇠로 만든 덤프스터는 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
그 뒤에 가려진 그들의 무기는 안전했지만 반대로 경호원들이 쓰는 첨단 발사 메커니즘은 잠금이 풀리는 데 5초가 더 걸릴 터였다.
그 다섯 초면 충분했다.
지금이야!
"지금!"
워든이 명령을 내렸다.
조르는 엄폐에서 몸을 튀어나오며 사격을 시작했다.
원래라면 보그랑 론이 엄호를 해 줘야 했는데—
씨발, 뭐 하는 새끼들이야.
그는 건물이나 창문은 맞추지 않게 일부러 땅을 향해 쏘아댔다.
튀어 나가는 탄피 소리, 튕겨 나간 탄환이 물을 터뜨리며 내는 소음이 오히려 더 그럴듯한 인상을 남겼다.
탄환 몇 발이 튕겨 나가면서 여기저기 창문이 깨지는 소리도 들렸다.
아야는 거의 그와 붙어 움직이며 그대로 뒤를 따랐다.
"보그, 견인차 잡아!"
워든이 외쳤다.
경호원들이 총을 떨어뜨리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보기 좋게 항복.
양쪽 다 아마추어 냄새가 나는 현장이었다.
탕.
경호원 하나가 그대로 쓰러졌다.
"보그!"
조르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사격 중지!"
그는 경호원들 쪽으로 뛰어가 놈들이 들고 있던 소총을 걷어 차 차체 아래로 밀어 넣었다.
한 놈을 거칠게 돌려 세워 부서진 공사 바리케이드 쪽을 향해 서게 했다.
두 번째 놈은 똑같이 겁먹었는지 따로 지시할 필요도 없이 그대로 따라 했다.
아야는 빠르게 몸수색을 하고 놈들 허리춤에서 권총들을 뽑아냈다.
애초에 쓸 생각조차 안 했던 물건들이었다.
드디어 보그가 엄폐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시그니처나 다름없는 보라색-네이비 점프슈트를 걸치고 라임색 머리를 뒤로 쫙 넘긴 채 마치 액션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놈은 총을 다시 들고 한 발 더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보그, 내려놔."
조르가 고함쳤다.
보그는 듣지 않았다.
그저 말썽을 한 번 더 부릴 생각에 들뜬 악동처럼 씨익 웃을 뿐이었다.
"보그, 트럭으로 가!"
이번에는 워든이 지시했다.
"계획대로 해."
"들었지?"
조르가 이를 갈듯 낮게 말했다.
보그는 대충 총구를 위로 휘둘러 어깨에 기대더니 총열이 아직 뜨겁다는 걸 느꼈는지 얼굴을 찡그리고 재빨리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는 워든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도록 손목 위에 달린 작은 패널을 몇 번 두드려 통신 링크를 끊었다.
"우릴 좆같은 위험 속에 처넣은 그 '계획' 말이야?"
보그가 입을 뗐다.
"우리는 여기서 총알밥 먹고 그 새낀 안전한 데 앉아서 명령만 씨부리는데?"
그는 소매를 걷어올리고 손목 위 작은 패널을 짧게 조작했다.
삑— 하는 짧은 비프음과 함께 팔과 어깨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몇 초 만에 원래보다 거의 한 배 반은 커졌다.
보그는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자기 이두박근에 입을 맞췄다.
"끝내주지, 안 그래?"
그가 아야를 향해 윙크했다.
"전혀, 하나도."
그녀는 두 경호원을 겨눈 채 보그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냥 견인차나 끌고 와."
"시간 됐어!"
넷러너의 합성 음성이 재촉하듯 울렸다.
보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애초에 30초 전부터 가 있었어야 할 자리로 터벅터벅 뛰어갔다.
계획에서 꽤 크게 벗어난 행동이었다.
멀리서 경찰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깔렸다.
"가. 뛰어."
조르가 경호원들에게 명령하며 동시에 아야의 팔을 살며시 내려줬다.
경호원 둘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서로를 한 번 쳐다보더니 곧 자기끼리 발에 걸려 넘어질 뻔할 정도로 죽어라 내달렸다.
"장치!”
조르가 소리쳤다.
아야는 트럭을 돌아 뛰면서 까만 포니테일을 바람처럼 휘날렸다.
정말 빠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임플란트를 장착한 티가 나지 않았다.
조르는 트럭 앞쪽에 서서 거리 끝을 계속 주시했다.
"지뢰 설치 완료. 5초 남았어."
아야가 보고했다.
괴물 같은 엔진음이 갑자기 거리를 울렸다.
곧이어, 후진할 때 특유의 삐삐 소리를 내는 쓰레기 수거차가 가까워지는 소리가 겹쳤다.
"야, 씨발 뭐야?!"
보그가 황당하다는 듯 소리쳤다.
"운전은 원래 내 담당이잖아!"
"그럼 씨발, 등신처럼 쳐놀지 말고 운전하러 왔어야지."
밀레나가 통신으로 받아쳤다.
아야는 트럭 옆으로 돌아와 앞 펜더에 몸을 기댔다.
양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폭발음은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애들 장난 로켓 폭죽 같은 소리만 났다.
그게 더 나았다—안에 실린 물건은 멀쩡해야 하니까.
그들은 재빨리 뒤쪽으로 돌아가 트럭 뒷문을 힘주어 잡아당겨 열었다.
"나… 뭐라도 할 일 있냐?"
론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물었다.
"아냐, 이제 내려와도 돼."
조르가 답했다.
1-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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